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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교연회와 재판1024호 사설

지난 입법의회가 통과시킨 법 중에서 사회법정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악법이라는 지탄을 받은 일이 있다. ‘교회재판을 받기 전 교인간 법정소송을 제기’하거나, ‘교인의 처벌을 목적으로 국가기관에 진정, 민원을 제기하였을 때’ 범과가 되며 감독 및 감독회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교회재판 이전에 사회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면 범과가 된다. 이 범과들은 가장 중한 처벌인 ‘출교’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된 내용은 ‘교회재판을 받은 후 사회법정에 제소해 패소하였을 경우 출교에 처한다’는 개정안이었다.

이러한 조항이 지나치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었지만 감리교회의 혼란과 수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주로 평신도들의 강한 입장이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근 감리회 사태를 지켜보면 이런 조항에 위배되는 범과들이 숱하게 등장하지만 어느 하나 이 법으로 처벌받았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한다. 관련 조항으로 고발된 이가 있었지만 재판까지 갈 것도 없이 심사위원회부터 이 법을 적용하지 않아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가는 모양새다. 사실상 법안이 사문화死文化된 셈이다.

현실이 이런데, 최근 취임한 어느 평신도 단체장은 취임사에서 “사회법에 제소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입법보완”을 하겠다는 말을 남겨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면 평신도들이 저런 주장을 계속 하는 이유도 이해할만 하다. 빈번한 소송에 감리교회는 안으로부터 곪아가고 밖으로는 얼굴을 들지 못 할 만큼 수치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랑할 것은 알리고 수치스러운 것은 감추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최근 우리 안의 일부는 내부의 허물을 오히려 부풀려 외부로 떠벌리는 사실상의 자해自害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며칠 전 광화문 한복판 감리회 본부 앞에서 벌어진 일인시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가 감독회장을 상대로 일인시위를 벌인 일인데, 소동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요즘 유행어처럼 부끄러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이의 행동을 손가락질 하거나, 사회법 소송 같은 문제로 교단의 수치 또는 분쟁거리를 왜 외부에 알리냐고 책망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 감리교회가 건강한 조직과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내부의 문제들을 적법하고 원만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부터 되물을 필요를 말해야 한다. 

학연이나 정치적 입장, 개인적 이해 및 친소 관계에 따라 법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똑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법이 적용되는 이해 못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번 소동에도 관련된 어떤 이는 자기가 교단 요직에 책임자로 있던 불과 1년 사이 숱하게 태도를 바꾸고 법 적용 조차 자의적으로 남발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풍토라면 억울한 일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고 그런 이들이 호소할 길은 사회 법정이거나 혹은 일인시위 같은 울분에 찬 행동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일인시위 소동의 당사자는 과거 호남선교연회에서 목사직이 억울하게 면직되고 이로 인한 장기간의 소송으로 인해 자신의 부인까지 사망하게 됐다며, 현재 관리감독인 감독회장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사건은 사회법정에서 감리회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확정 판결을 받아 감리교회가 더욱 당황스럽게 됐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감독회장이 이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등의 조치를 해당연회에 지시했다고 알려지는 대목이다. 솔직히 말해서 2010년도에 벌어진 사건의 책임을 현재의 감독회장이 굳이 떠안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해서 정말로 억울한 일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와 명예회복을 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당사자의 억울한 사정과 별개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당사자에 대한 징계 혐의와 판결이 합당했는지는 다시 따져볼 일이지만, 호남선교연회의 재판 자체가 불법이라는 주장이나 사회법원의 판결은 좀 더 심각하게 재고하고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사회법의 판결 근거는 호남선교연회가 ‘선교연회’이기에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견이 있고 상식적으로 봐도 문제가 된다. 

굳이 말하면 우리가 법을 잘못 만들고 운용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는 하다. 장정에 보면 선교연회에 대한 부분이 있음에도 유일한 선교연회인 호남선교연회를 특별법으로 다시 규정한 것부터가 문제다. 사실상 독립연회처럼 분리해 감독회장이 직접 관리하도록 했으니 당연히 소속 연회가 없어졌고 선교연회의 기본 성격과 특별법의 위상 사이에서 혼란이 생긴 것이다. 선교연회기 때문에 재판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려다보니, 호남선교연회의 1심 재판은 총회재판위원회가 담당하면 된다는 하석상대下石上臺식의 또 다른 탈법과 궤변까지 등장한다.

일단 이 논쟁은 지난 15일 총회 장정유권해석위원회가 호남선교연회도 재판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려 우리 안에서는 해결 가닥을 잡았다. 남은 과제는 올해 입법의회에서 이 부분을 보완해 또다시 논란이 반복되거나 사회 법정의 엉뚱한 판결로 교회가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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