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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에 휘둘리지 않는 거룩함을 지켜야1025호 사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요즘 인사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보고 있으면 이런 나라의 국민인 사실조차 부끄럽다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든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장관 인사청문회는 막장에 가까운 한심함을 노출한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을 꾸리겠다는 장관 후보자 7명 가운데 벌써 2명이나 낙마했다. 정부와 여당은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철저한 방어를 공언하고 있지만 도대체 뭘 지키려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호기롭게 과거 정권을 적폐라 규정한 현 정부가 정작 자신들의 인사 문제에 있어서는 진영논리에 매몰돼 ‘캠코더’ 인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선택한 인물들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한 하자와 허물을 드러내면서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스로 정했다는 ‘7대 비리 배제 원칙’은 이미 무색해진지 오래다. 

‘사람이 없다’는 청와대 책임자의의 변명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정치하는 것들의 더러움에는 좌우가 없다’는 어느 목사의 푸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이번 인사 논란은 결국 검증 시스템의 오작동에서 발생한다. 그러한 오작동이 고의든 실수든 반복되어서는 곤란한데, 오만傲慢한 정권은 “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기준을 삼고 있는 ‘검증의 틀’ 자체가 문제”라면서 오히려 이것을 고치자고 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현실이다.

국민의 기대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검증의 기준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검증 시스템의 부실부터 고치라는 것이다. 잘못된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는 현실도 문제가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덮고 가려는 것은 하수下手다. 문제를 해결하고 돌파하는 것은 그나마 중수中手쯤 된다. 고수高手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그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교회 정치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준을 탓하고 편법이나 탈법을 묵인해서는 곤란하다. 처음부터 법과 절차, 원칙과 명분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철저한 검증과 책임지는 풍토를 만들어가야 한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서울남연회 감독 문제도 사실 할 말이 많다. 정말 그분이 감독의 자격이 없었다면 단독후보로 만든 연회 전부가 공동 책임자이며,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선관위 잘못이 크다. 또 10년 전 문제라 하니, 그 당시 제대로 조사하고 처리하지 못한 심사위원회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은 당사자 외에는 누구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음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지난 1일 또 하나의 답답한 사건이 벌어졌다. 소송이 제기된 3개 연회의 감독선거를 다루는 재판에서 남부연회 선거에 대한 무효판결이 나왔다. 하필 이날은 만우절이어서 차라리 만우절 거짓말이면 좋겠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굳이 말하면 감리교회 현실도 점입가경인 셈이다. 감독회장 선거는 2년 넘게 무효 시비가 법정에서 이어지고 있고, 지난해 감독 선거는 10개 연회의 절반 정도가 소송 시비에 휘말린 끝에 결국 2명의 감독이 중도 하차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탄식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감리교회가 차제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런 소동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 정비했으면 한다.

기준을 탓하고, 총특재의 판결에 불만을 말하기 이전에 초등初等 단계에서 제대로 기준을 적용하지 못하고 드러난 하자조차 걸러내지 않은 잘못을 먼저 반성하고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시스템이 고장났는데 고칠 생각은 안하고 온통 다음 선거와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감리교회의 현주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당장은 서울남연회와 남부연회 재선거부터 깔끔하게 진행해 다시 시비되는 일이 없도록 선관위와 후보자 진영에서 노력해주길 당부해 본다.

법과 기준을 탓하며 불법과 편법을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법’과 ‘기준’을 “있는 그대로” “바르고 상식적으로 적용해” 공정하고 검증 가능한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송나라 학자 주돈이周敦颐는 ‘애련설愛蓮說’이란 시에서 이이불염泥而不染, “내가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진흙 속에서 나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라 노래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시에 대해 “우리가 태어나 살아가는 이 세상이 진흙이라면 거기에 물들지 않는 연꽃은 우리가 돼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세상의 정치 방식, 선거제도의 한계가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 휘둘리지 않은 공교회의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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