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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계절을 새 희망의 계절로1026호 사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봄소식이 한창이어야 할 생동의 계절을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당시 시인이 겪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 탓이다. 파괴된 세상과 무기력해진 시대의 황폐함을 그리 노래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는 매우 유명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황무지라는 다소 난해한 시가 아니라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詩句가 공감을 얻어 회자膾炙되는 셈이다.  

그만큼 한국의 근·현대사가 기억하는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71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4·3의 아픈 기억은 1만 4000여 억울한 죽음의 하소연을 채 풀어주지 못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남겨두고 있다. 185명의 젊은 목숨을 앗아간 4·19의 기억도 정치적 혼란기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을 던지며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들려오는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을 반복한다.     

5년 전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4월’을 더욱 잔인한 계절로 만들어 버렸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이 ‘그저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비리가 얽혀있고 정부의 책임과 존재 이유를 따져 묻는 국민의 원성과 질타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5년의 긴 세월 광화문 광장을 지키던 유족들은 이제서야 자기들 삶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들 가슴 속 깊이 남겨진 아픔과 상처는 결코 아물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오늘의 4월은 또 하나의 잔인한 상처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산불이 강원도 일대를 휩쓸면서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 5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아직은 정확한 집계조차 어려운 실정이지만 정부 당국에 의하면 8일 현재로 주택 510채가 불에 탔고 1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이 지역은 감리교회가 많은 곳이어서 감리교회와 교인들의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부연회가 집계한 피해 현황을 보면 이번 산불로 인한 유일한 사망자가 감리교인이다. 교회가 전소된 곳이 있고, 교인 가정의 피해도 상당해 현재까지 32건의 피해가 보고됐다.

이처럼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4월, 오늘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4월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정말 잔인한 계절이다.

그러나 신앙의 눈은 그 안에서 다시 생명의 기운, 다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4월은 그저 잔인한 사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만이 아니라 그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사건이 이 계절에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세상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그 죽음을 그대로 두지 않고 무덤을 깨고 일어나게 하셨다. 영원한 생명의 승리,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의 정의를 세상에 선포하신 것이다. 잔인한 세상, 암울한 현실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말아야 할 희망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한 4월을 견뎌내도록 우리를 다그치지만, 부활의 사건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는 더 이상 그 아픔과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내고, 더 나아가 그것을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

그 일의 시작은 믿음이며, 아픔의 현실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엄청난 산불 피해를 입어 망연자실해 있을 동부연회의 형제·자매들,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고, 그들을 도와 빠르게 삶의 자리를 회복하도록 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감리교회 본부와 동부연회가 발 빠르게 나서 피해상황을 집계하고 일차 위로 심방까지 실시했다니 무척 감사한 일이다. 피해상황이 상세하게 파악되면 사회평신도국을 중심으로 재해기금을 전달한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확인된다. 또 다른 연회와 교회들이 긴급 구호 및 지원을 위한 모금 등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어 비록 상황은 안타깝지만 그 안에서 다시 희망을 만들어 내는 교회를 기대할 수 있어 다행스런 마음이다.  

여전히 4월을 잔인한 계절로 남겨둔 세월호 참사나 제주4·3의 아픈 기억도 마찬가지다. 함께 울어주겠다는 약속,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이 땅에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창한 사건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픔을 겪는 이웃들, 상처 입은 영혼들이 참 많다. 잠시 주위로 눈을 돌려 잔인한 계절을 힘겹게 견뎌야 할 이들을 찾아보고 위로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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