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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의 공간입니다”유가족들 상처 씻어주는 ‘4·16 희망목공소’
박인환 목사, “아픔에 공감하는 한국교회 되길 소망”
박인환 목사(사진 왼쪽)와 미지 아빠 유해종 씨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국가적 재난수준의 사고로, 이후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져 국가적 안전재난망에 대한 총체적 부실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더욱이 사고에 대한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가족들은 더욱 더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참사 1년이 지난 2015년 9월 17일. 합동분향소가 있던 안산화랑유원지 한켠에 ‘4·16 희망목공소’가 마련됐다. 당시 감리회는 목공소에 필요한 설비 구입 비용을 지원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희망목공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얼마 앞두고 희망목공소 마련을 위해 애써왔던 박인환 목사(안산화정교회)와 미지 아빠 유해종 씨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목공소의 시작은 201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슬픔에 빠져 있던 유가족들은 대기실에 앉아 한숨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박인환 목사는 슬픔에 빠져 있는 그들을 보며 이대로 계속 시간만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것을 찾고 있던 중에 누군가 목공을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고 유가족들의 의사를 확인 후 박 목사는 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박인환 목사는 감리회에 필요한 재정을, 유가족들은 안산시청에 목공소 자리를 요청했다. 목공 기술은 예장 측 안홍택 목사와 이진형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총무)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세월호 유가족들 역시 회의적이었다. 더욱이 목공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기에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이다.

미지 아빠 유해종 씨도 그랬다. 목공 일을 배운다고 상처회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주변의 권유에 못이겨 이름이나 올려놓으라고 했었지요. 그렇게 목공 일을 배우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희망목공소는 기술을 익히면서 그해 가을 플리마켓을 통해 처음 만든 것을 판매했다.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사용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목공기술을 배워갔고 지난해 10월에는 협동조합 허가를 받고 ‘416목공협동조합’으로 재탄생됐으며 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안산 꽃빛공원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박인환 목사 역시 이곳에서 4명의 아빠들과 함께 목공기술을 배웠고 1급 목공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현재 희망목공소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있다. 교회에서 필요한 기도대, 강대상 등의 성구와 나무침대, 독서대, 서랍장, 책상, 테이블, 책장 등의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박 목사는 아직 판매수익이 거의 없긴 하지만 상품의 질은 어느 가구점 못지 않다고 자랑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못을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 형태로 제작됩니다. 맞춰서 끼워야 하기 때문에 기술과 시간이 더 요하는 작업이 많습니다. 결과물 역시 시중에 나와 있는 가구 못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가구나 성구들은 비만 안맞으면 몇백년 사용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안산 꽃빛공원 내에 마련 돼 있는 4.16희망목공소.
박인환 목사가 직접 만든 기도대에서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공소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유해종 씨는 나무를 만지면서 치유가 됐다고 고백했다. “나무를 만지는 시간만큼은 잡념이 생기지 않아 좋았어요. 나무의 촉감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목공을 하다보면 마음이 순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다보니 조금씩 마음도 회복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유 씨는 목공소를 통해 웃음을 찾게 됐다고 전했다. “여기에서는 눈치 안보고 마음껏 웃을 수 있어 좋아요. 사실 밖으로 나가면 시선이 좋지 않아요. 웃으면 유가족이 웃는다고 뭐라 하시고, 그렇다고 우울하게 다니면 언제까지 그렇게 다닐거냐고 하시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목공소가 저희의 해방구가 됐습니다.”

또한 유해종 씨는 목공을 하면서 잠을 잘 수 있었다고도 이야기했다. “사고 이후 1년 이상  밤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눈을 감으면 아이들이 생각났으니까요. 하지만 목공을 하면서부터는 집에서 잠을 조금이나마 잘 수 있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아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협동조합으로 재탄생한 희망목공소는 내달 25일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유해종 씨는 수익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미약하지만 이제는 저희가 보답해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익이 생기면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 씨는 교회가 희망목공소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친환경 원목으로 질좋은 제품을 만드는 만큼 교회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의 발걸음이 목공소를 향해 주셨으면 해요. 필요하시면 목공소 견학도 하면서 저희의 아픔에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인환 목사는 교회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에 계속 공감해야 한다고 소망했다. “정치권에서 만든 정치적 프레임을 교회가 그대로 적용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닌 생명에 대한 문제, 공동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는 그들의 아픔에 계속 공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박 목사는 자기가 특별한 목사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세월호 이후 아이들이 죽음을 접하고 장례 치러진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세월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은 소수입니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목사인데 특별한 목사로 비춰집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김준섭 기자  joon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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