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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뿌리임봉대 목사(국제성서박물관 관장)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욘 2:6)

“산의 뿌리”는 히브리어로 “키츠베 하림”이다. ‘키츠베’는 ‘케체브’(bc,q,)의 복수형으로 ‘모양’ 혹은 ‘맨 끝’이란 뜻이며, ‘하림’은 산을 의미하는 ‘하르’의 복수형이다. “키츠베 하림”은 “산들의 맨 끝”, 즉 산들을 받치고 있는 기둥의 맨 아래쪽을 말한다. 이것은 고대의 우주관을 반영한 표현이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도 고대의 우주관에 기초한 고백이다.

천지창조 이야기를 현대 과학의 이론과 비교하여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는 논쟁을 하는데, 이것은 고대의 우주관과 현대의 우주관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 뿐 종교와 과학 중 누가 옳은가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성경은 고대의 우주관에 기초하여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아래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과제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변화된 우주관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궁창을 만들어 물을 위의 물과 아랫물로 나누고 궁창을 하늘이라고 하고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땅과 바다를 만드셨다. 산과 들로 된 땅의 기둥은 아랫물에 박혀 있다. 사람이나 짐승들은 그 육체가 땅의 흙으로 만들어져서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죽은 자들이 돌아가는 곳이 스올이다. “산의 뿌리”는 스올이 있는 곳이며, “그 빗장”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문이다. 이렇듯 땅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인 “산의 뿌리”와 “그 빗장”은 스올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지하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요나가 자신이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으며 그 빗장으로 자신을 오래도록 막았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 분명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나의 생명을 다시 살려 주셨다. ‘구덩이’는 히브리어로 ‘샤하트’인데, 땅 속에 있는 구멍을 말한다. “구덩이에서 건지셨다”는 말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면서 배 밑으로, 물고기 뱃속으로, 스올의 뱃속으로, 그리곤 산의 뿌리까지 계속해서 내려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배에서 나오게 하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하시고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셨다. 요나는 내려가고 하나님은 올리셨다. 죽음에서 구원을 받은 요나는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라는 고백처럼 요나는 ‘나의’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라고 하였으며 마지막 16장에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롬 16:25)이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요나는 자신이 체험한 구원을 고백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도 자신이 직접 체험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구원이 나의 구원이 되고  주님의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1인칭이다. 믿음은 내가 경험하고 내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내가 믿고 전파하는 복음도 1인칭이다. 나의 복음은 나를 변화시킨 복음이요 내 속에서 역사하는 복음이며, 내 생명을 걸고 확신하는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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