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회 감리회
고 김성식 목사 순교비 건립고모교회, 창립 83주년 맞아 교회·나라·농촌사랑 이어간다

 

교회를 세워 영혼을 구하고,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던 중 공산당에 의해 순교한 고모교회 초대 담임자 김성식 목사의 순교비가 제막됐다.

고모교회(담임 노철옥 목사)는 26일 창립 83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한편 고 김성식 목사 순교비를 건립하고 김 목사의 신앙과 삶을 기리고 따를 것을 결단했다.

김성식 목사는 1948년 6월 고모교회 초대목사로 파송 받아 시무하면서 농촌 계몽에 앞장섰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피난길에 오르려 할 때 공산당원들이 목사의 행방을 물으며 교인들을 괴롭히자 스스로 인민회당을 찾아가 투옥됐으며 총살 당했다.

이날 예배는 창립 83주년 기념 감사예배와 2부 순교비 제막식으로 진행됐다.

노철옥 목사의 사회로 드려진 1부 창립 83주년 기념감사예배에서는 양미훈 장로가 기도하고 이미옥 권사의 성경봉독에 이어 김영옥 교수가 특별찬양했다. 고모교회 6대 담임이었던 권성연 목사는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자’는 제목으로 “예수의 권세와 능력, 그 이름을 굳게 잡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주님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자”고 설교했다. 14대 담임 민봉식 목사가 축도했다.

이어진 고 김성식 목사 순교비 제막식 감사예배에서 애국가가 제창됐으며, 김형원 장로가 순교비 제막과 관련해 사업을 보고한 뒤 고 김성식 목사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슬하에 5남 2녀를 둔 김성식 목사의 자손으로는 감리회 목회자인 김동형 목사, 김동걸 목사(돈암동교회 원로)가 있으며, 사위 중 장로교 목사인 김윤실 목사는 한국전쟁시 순교했으며, 유대종 목사는 은퇴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김동걸 목사는 “하나님과 고모교회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면서 “배교자들이 날뛰고 그들이 쓴 글이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이상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순교비 제막식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며 “고모교회가 이 신앙을 이어 은혜받고 성장하고 열매맺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이어 고모교회 출신 김정원 장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길 바란다”고 교인들에게 당부했으며, 교회를 대표해 안순학 장로는 “1년에 한번 창립일에는 전국에 있는 고모교회 가족들이 모이길 희망한다”며 “고향교회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9대 담임 이신교 목사와 김경운 목사(정천제일교회), 11대 담임 이상웅 목사, 경깅녀회부흥단장 서예석 목사가 축사와 격려사를 통해 김성식 목사의 순교의 믿음을 이어갈 것과 그 믿음이 가져올 교회의 축복을 축하했다.

노철옥 목사는 김재옥, 김형원, 윤영기 목사에게 공로패를 전달했으며, 전명구 감독회장을 대신해 진인문 목사(경기연회 전 감독)가 노철옥 목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순교비 제막 후 진인문 목사가 축도했다.

 

순교비 비문

김성식 목사(1890.11.24.~1950,7.10.)

1910년 한일 합방과 을사늑약으로 나라와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억압으로 신앙은 물론 인간으로서 자유의 삶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당시 농민들의 생활상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지와 문맹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청명산 기슭 끝자락 마도면 고모리 석밭동 510번지에 믿음과 복음의 정초(定礎)를 세웠다.

고모교회 초대 김성식 목사는 1890년 11월 24일 평안남도 용강군 김난주씨의 4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셨고, 배재학당, 연희전문 협성신학교에서 수학하셨으며 1917년 강원도 강릉 명성국의 딸 명대륜과 결혼하여 7남매를 낳았다. (그 중 두 아들 김동형, 김동걸은 감리교 목사로 은퇴하였고, 두 사위 중 김윤실은 장로교 목사로 한국 전쟁시 순교하였고 유태종은 장로교 목사로 은퇴하였음)

1919년 중부연회 남양서 구역 사강교회를 순회 시무하고, 1920년 현 서울연회 창천구역 본처 사역자로 파송 받아 시무하다가 1932년 하얼빈에서 해외선교 하기도 하였다.

1948년 6월 28일 고모교회 초대목사로 파송 받아 시무하면서 마도공민학교, 서신공민학교 교육의 기반 조성에 기여 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 계몽의 선구자로서 활동하였다. 당시 김영재 권사의 가정 사랑방을 제공받아 사역에 전념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나라가 혼란 속에 있던 중 공산당원들이 김성식 목사를 잡아가기 위해서 찾아다닐 때에 이 소식을 듣고 혹여 성도들이 고초를 당할까 마음 아파하던 중 온 가족이 부산 피난길에 오르려고 할 때, 자녀들의 눈물어린 만류를 뿌리치고 김성식 목사 스스로 마도인민회당을 찾아가 투옥되었다.

옥고를 치르시는 동안 김오례 권사의 딸 재옥(당 13세)이 옥바라지를 위해 보리밥을 지어 아침 저녁으로 보름동안 먼 길을 오가며 식사를 제공하던 중 1950년 7월10일 김성식 목사가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너희 목사는 총살 당했다" 는 순교의 소식을 듣고 재오은 보리밥덩이를 땅에 떨어뜨리고 통곡하다 돌아온 것이 그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동안 고모 교회 성도는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성도를 사랑하여 스스로 순교를 택한 김성식 목사의 신앙의 절개를 숭모해왔다.

이에 2018년 5월 27일 창립 82주년 예배에서, 고모교회 성도와 출향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김성식 목사의 숭고한 신앙과 순교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순교비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2019년 5월26일 창립 83주년을 맞으면서 이곳에 순교비를 세우게 되었다.

 

김혜은 기자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