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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고 건설적인 교회를 기대하며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자기애自己愛를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게 되고 심한 경우 병리현상으로 분류된다. 1950년대 프랑스 정신의학자인 폴 클로드 라카미에Paul-Claude Racamier가 처음 ‘악성 자기애’라는 개념을 세상에 발표했고, 에리히 프롬도 악성 자기애Malignant narcissism라는 용어를 인격 장애로 사용했다.  

간단히 말하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 더불어 함께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한다.

악성 자기애자들은 사이코패스에 비해 우리 주변에 더 많이 포진해 있음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전문가 장 샤를르 부슈는 최근 펴낸 책에서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충동을 물리적인 행동으로 쉽게 옮기는 반면 악성 자기애자는 냉정을 잃지 않는다. 피해자 당사자와의 관계에서가 아닌 외부의 눈으로 보면, 그는 일견 건실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할 줄 알며, 겉보기에 매우 매혹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이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애초부터 타인이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대상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사람에 대한 존중,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교회 안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이용하는 일에 아무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감리회 주변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분쟁이나 마구잡이로 벌어지는 소송 전을 봐도 그런 부류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음을 깨닫게 된다. 한마디로 몇몇 악성 자기애자들의 분탕질에 거룩해야 할 감리교회가 오물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질 못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 무혐의로 끝난 고발사건도 결과를 놓고 보면 위장 고발인까지 내세워 허위 사실로 감리교회를 뒤흔들려 한 꼴이다. 고발 내용은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누구의 허물을 탓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걸 굳이 수사기관에 알리고 세상 법정으로 가져가 무슨 이득을 보려 한 것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기왕에 우리 문제가 법정으로 가 있으니 더 이상의 추태는 그만하고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렸으면 한다. 법法과 절차, 순리順理와 상식으로 일이 풀려가길 기다리는 게 맞고, 만에 하나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안타까워하면서 그다음 필요한 수순手順을 밟는 것이 감리교회를 훨씬 더 은혜롭고 건설적인 신앙공동체로 만드는 길이다. 

거짓과 모사를 꾸며 이익을 탐하거나, 모든 것을 남 탓으로만 돌리며 자기 허물을 감추거나,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이용대상 혹은 제물로 삼아 무엇인가를 쟁취하려는 행태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더 이상 교단 정치에 발을 붙이지 못했으면 한다.

천박淺薄한 위선僞善과 어수선한 잡기雜技가 난무하는 개탄스런 현실이 이어지지만, 남아있을, 그루터기를 믿는 소망을 회복해 소통과 공감, 양심과 공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가치를 회복하는 바른 감리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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