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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이지혜 사모(3공수특전여단 비호군인교회)

화분 속 키가 작았던 식물들이 한춤 자란 것을 보면서 새삼 놀랍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4, 마13, 눅8)가 떠오른다. 각기 다른 네 가지 땅(길 가, 돌짝밭, 가시밭,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다. 이 비유만큼은 친절하게 예수님의 해석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 비유를 보노라면 네 가지 다른 컨디션의 땅에 공통적으로 ‘씨가 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보통 씨가 열매맺기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건만, 어째서 길 가에도, 돌밭이나 가시밭에도 씨가 뿌려졌을까.

당시 고대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은 기경하기 전인 밭에, 큰 자루에 씨를 담아가지고 동물이나 사람이 뿌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느 씨는 그 동물이나 사람이 낸 길로, 또 기경 전인 돌 위에, 뿌리가 뽑히지 않은 가시의 사이에, 더러는 좋은 땅에도 뿌려진 것이었다. 예수님은 당시의 농사법을 예로 하여 비유하셨음을 알 수 있다.

팀 켈러의 책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은 탕자에게 붙였던 ‘Prodigal’이라는 형용사를 하나님에게 붙인다. 낭비, 탕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써버린다는 형용사를 붙이니, ‘낭비하는, 탕진하는 하나님’이다. 잃어버린 두 아들이 모든 것을 써버린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낭비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써 낸 책이다.

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운데 밭의 컨디션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상태와 상황이 어떠하든지 씨를 낭비하여 뿌리신 하나님을 본다. 그 씨는 온 존재로 우리에게 던져지신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복음이다.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낭비로 주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그 복음이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허락 된 이 복음이 어떤 이의 삶 가운데는 30,60,100배 열매를 맺는다. 당시 농사법에 의하면 1알의 씨가 10개 정도, 즉 1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 평균이었다고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마어마한 풍작이다. 어떻게 이러한 결실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결국 복음의 말씀이 제대로 심겨진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농부’가 되어서 자신의 열매를 다시 낭비할 때, 또 다른 땅에서 풍성하게 열매가 맺고, 그 열매가 또 다른 씨가 되어 심기는 복음의 ‘전수’가 방법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처럼 온 존재로 낭비되어진 사람을 통하여 어마어마한 열매가 이어지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군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탕진을 자주 경험한다. 그것이 우리가 목회하며 심어질 수 있는 비결이다. 황무하기 그지없는 땅, 척박한 마음 가운데도 심어야 한다. 기경되지 않아 딱딱한 그 안에도 뿌려져야 한다. 어려움과 역경, 유혹이 있는 사람에게도 심겨야 한다. 그렇게 성도들에게, 청년들에게 낭비하며 살고 있다. 전혀 복음을 몰랐던 이들과 1:1로 만나 복음을 전한다. 성도들과 그룹을 지어 TEE성경공부를 시작하여 일주일에 몇 그룹씩 복음을 전한다. 밤이든 낮이든 심방하고, 기도와 상담을 이어간다. 그 가운데 뿌려진 복음이 한 두사람 가운데서 열매 맺으며, 그들이 또 낭비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도 본다. 그것이 농부의 큰 기쁨이다.

절제하며 보내는 사순절의 전통 가운데, 나는 다시 더욱 ‘낭비’하겠다고 결심해 본다. 그렇게 한 사람의 농부가 되어 마음껏 낭비할 때, 더러는 떨어진 그 좋은 밭의 열매가 또 낭비되는 삶으로 이어져서 우리 교회 안에, 군대 안에, 한국 교회와 열방 가운데 30,60,100배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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