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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무엇을 잘라 버렸는가?박현식 목사(새순교회)

일본의 대도시 A교회에서 남선교회 헌신예배가 있었다. 특송 시간이 되었는데 남성 중창단 3명이 나와서 은혜롭게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이 3명에게는 특이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첫째, 그들의 목과 팔에는 위압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용문신이 있었다. 둘째, 똑같은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커다란 덩치와 팔자걸음 등 누군가 보았을 때 ‘야쿠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외형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찬양은 마치 천사의 음성으로 들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송이 끝난 후, 그들은 회중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서 간증을 하였다. “교우 여러분, 저희 셋은 다 야쿠자였습니다. 또한 저희들의 아내가 다 한국인들입니다. 저희 모두 아내들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를 보십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 세 명이 왼손을 들어 보이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3명 모두 새끼손가락이 없었다.

“교우 여러분, 저희 세 명의 새끼손가락이 없는 이유를 설명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야쿠자 두목을 찾아가서 ‘두목님, 저희들은 이제 야쿠자 조직을 떠나겠습니다. 두목님도 예수님을 꼭 믿으십시오’ 하고 전도까지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야쿠자 두목은 처음에는 저희들이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줄 알다가 사실을 확인하고는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야쿠자 조직원들을 다 식당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너희들 세 명, 분명히 야쿠자 조직을 떠난다는 것 맞는가?’ ‘네’ 라고 대답을 하니 ‘너희들 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라’ 하고는 저희들의 새끼손가락을 다 잘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야쿠자 조직을 떠나게 될 때 그 조직을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야 떠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야쿠자 세 명의 회심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적 교훈을 주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의 손가락을 바라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잘라버렸는가? 무엇을 포기하였는가? 혹시 나는 예수님이 지고 가시는 십자가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마음 속 깊은 숨은 동기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이용하여 세상의 복을 다 누리고, 교인들에게 인기 있는 목사가 되고자 하고, 모든 권세를 다 차지하려는 야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 목회자가 맞다면 예수님 말고는 다 버릴 수 있고 포기할 수도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 말고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나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면, 많은 사례비, 최고급 승용차, 넓은 주택, 우리 목사님이 부임하셔서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되어서 목회 성공했다는 평판, 설교 잘하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칭송, 나의 말 한 마디로 굽실거리는 어느 누구에게는 선교비를 주고 내 기준(?)에 안 맞는 어떤 사람에게는 안 줄 수도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 나에게 나중에 분명히 힘이 되어 주고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큰 교회 목사의 전화와 부탁은 벌떡 일어나서 경청하고 바로 승낙하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목회자들의 부탁은 그들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고 내가 그들을 무시한다고 나에게 무슨 불이익이 돌아오지도 않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 사람들에게 대접받기 쉬운 높은 직책과 명예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고자 하는 야망 등등. 나는 이런 육적인 생각들을 진정 십자가에 못박았는가?

이 시간 일본에서 회심한 야쿠자 신앙인의 음성이 생생하게 내 귀에들리는 것 같다.
“◯◯◯목사야, ◯◯◯장로야, 너는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잘라버렸는가? 또한 무엇을 포기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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