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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시대의 찬송정진식 목사(음악박사, 감리교교향악단 대표)

한국에서 영어성경을 읽을 때 불편했던 점은 인명과 지명이었다. 미국에 와서 다시 영어 성경을 읽고 미국찬송가를 영어로 부르며, 한글성경과 한글찬송에서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보는 기쁨을 누렸다. 매우 번거로웠던 점은 여전히 인명과 지명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것과 고어체로 된 찬송가사를 해독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가인(케인), 에서(이소), 가나안(케이너언), 얍복(재보크), 갈렙(케일럽), 이새(제씨), 베델(베쓸), 이런 식으로 발음한다. 온라인에서 히브리어를 육성으로 들어보면, 한글표기가 영어보다 원어발음에 더 가깝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된다(https://www.torahclass.com/audio-bible-in-hebrew).
다행스러운 점은 일상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는 이름과 같아서 반갑곤 했다.

내가 오경을 읽을 때, 특별히 광야시대에 주신 말씀을 묵상할 때, 이민목회 상황과 연결되어 많은 은혜를 받곤 했다. 미국의 이민목회는 광야시대와 흡사하다. 이민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두 세배 힘겹게 살아간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한국방문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변 넘어 태평양을 바라보며 눈물짓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성묘하기에 바빴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중년의 나이에 이민목회를 고려하고 있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만류하곤 했다. 밖에서 볼 때, 한국에서 목회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이민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2세에 대한 관심이다. 웬만한 한인교회라면 교회학교, 한글학교, EM(영어 목회; English Ministries)이 있다. EM 사역자들은 ‘귀하신 몸’이어서 과분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이민 1세대들은 광야시대 같은 삶을 살면서도, 2세들에게는 가나안시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민목회 현장 곳곳에 스며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광야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찬송을 불렀다:
(민 21:17-18 표준새번역) 그들은 그 곳을 떠나서 브엘에 이르렀다. 브엘은 주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모아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마”하고 말씀하신, 바로 그 샘이 있는 곳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샘물아,
솟아나라.
모두들 샘물을 노래하여라.
지도자들이 파고,
백성의 어른들이
홀과 지팡이로 터뜨린 샘물이다.

이 찬송에 수반된 악기반주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홍해 기적 직후에 부른 찬송에 악기반주가 수반된 기록을 근거로 추측해 본다면, 악기반주는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목소리와 악기로 찬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시도 잊지 않았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웨슬리의 일기는 찬송으로 넘쳐 난다. 하루의 시작을 시편가로 시작했고, 4-5번씩 시간을 정해 시편가와 찬송가를 규칙적으로 불렀고, 새 찬송을 찾아 끊임없이 편집하고 출판하여 감리교인들이 부를 수 있도록 보급했다. 이 일에 악기의 찬송반주는 당연히 수반되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목소리와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웨슬리가 그 시대에 맞게 적용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맞는 목소리와 악기로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광야시대의 찬송을 나의 눈으로 읽으며, 광야같은 순회설교자의 삶을 살았던 웨슬리와 오늘도 여전히 광야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민교회와 연결시키며, 나는 광야시대의 찬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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