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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오경웅의 「성영역의」> 1편-군자와 소인 君子與小人송대선 목사(영파교회)

원문
1. 군자의 즐거움 오래 가누나 선을 행하니 온갖 복이 모이고
長樂惟君子 爲善百祥集
무도한 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소인배와 함께함을 부끄러이 여기네
不偕無道行 恥與群小立
2. 가볍기 그지없는 오만한 자 멀리하고 저들과 같이 앉음 탐탁치 여기잖네
避彼輕慢徒 不屑與同席
거룩한 말씀 속에 한가로이 거닐며 온종일 말씀 안에 젖어들기 즐기네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
3. 비유하노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 제때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譬如溪畔樹 及時結嘉實
추위가 몰아쳐도 잎사귀 마르잖고 울창히 자라나기 한이 없어라
歲寒葉不枯 條鬯永無極
4.안타깝구나 미련한 자들이여 땅에서 하늘이 한없이 먼 것같이
哀哉不肖徒! 與斯天淵別
이리저리 흩날려 아득히 멀어지니 바람에 나는 겨와 다르지 않네
悠悠逐風轉 飄飄如糠屑
5. 지혜로운 이들이 힘쓰는 바는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 끊어버리기라
天心所不容 群賢所棄絶
6. 우리 주님 바른 이를 인정해주시고 무도한 이들 끝내 사라지게 하시리라
 我主識善人 無道終淪滅

해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드러내는 시편 1편이 동양인의 사유에서 ‘군자와 소인’으로 전환되었다. 공자는 논어 술이述而에서 “성인은 내 아직 보지 못하였지만 군자만이라도 만나 보면 그것으로 좋다” 고 하였다. 요임금이나 순임금, 주공 같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 최고의 인격자를 성인이라고 한다면 군자는 누구나 스스로 수양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인격체로서 유교적 선비君子가 지향할 인간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덕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유학의 눈길로 보자면 성서가 말하는 ‘복 있는 사람’, ‘의인’은 ‘군자’와 다름 아니다. 그래서 오경웅은 시편의 첫 수를 ‘군자와 소인’이라는 제목으로 붙였다.

군자는 하늘을 닮고자 하나 소인은 제 주위에서 자신과 비슷한 무리를 좇는다. 진리의 길을 외면하는 무도한 자들은 늘 무리를 짓고 저들끼리 쑥덕이며 자신들의 의義를 생산해낸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악을 꾀하는 소인배일 뿐이다. 군자가 저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다. 군자가 저어하는 바는 남의 평가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하늘에 비추어보며 그에 따를 뿐이다. 그렇기에 그 마음에 부끄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멀리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군자는 점점 더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뿌리 깊어지니 가지는 자연 뻗어나가 울창해지고 결실은 풍성해진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무리 속에서 서로 치켜 세워주며 자신들의 의를 찾다가 뿌리 없어 메마르고 끝내는 가없이 흩어져 사라져갈 뿐이다.

오경웅은 1절에서 단순히 ‘복 있는 사람은’이란 번역이 히브리어의 많은 복과 즐거움을 묘사하는데 부족하다고 여겨 ‘장락長樂’과 ‘백상百祥’을 함께 넣었다. 2절 ‘성도聖道’의 원 의미가 토라(Torah)인데 단순히 율법을 의미하기보다는 율법을 포괄한 거룩한 가르침 모두를 의미한다고 여겨 ‘성도’라 하였으며 함영涵泳의 원 의미는 늘 잊지 않고 생각하여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사유한다는 것인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것보다는 ‘함영’, 늘 젖어든다는 단어를 택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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