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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의 고향을 찾아서 (中) 선교사를 결심했던 토론토에서의 하디장이려 목사(속회연구원 상임연구실장)
하디가 토론토 의대 시절 다니던 교회

하디 고향 탐방 일정을 계획하며, 하루하루의 일정을 상당히 느슨하게 짰다. 여유가 있어야 곳곳에서 많은 생각과 나눔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을 탐방해보니, 스케줄을 다 소화하기가 조금은 버거웠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여러 가지로 복합된 진한 감동으로 인해 곳곳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했기 때문이리라.

오늘의 일정은 하디가 의사로 선교사로의 삶을 구체적으로 준비한 토론토 의과대학 재학 시절 다니던 교회와 집 그리고 학교를 탐방하고, 저녁에는 ‘어머님의 은혜’를 작곡하신 박재훈 목사님을 만나 수요예배 겸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중 하디 관련 탐방지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하디의 토론토 의대 재학 시절 다니던 교회 (St. Luke's United Church ; 353 Sherbourne St, Toronto, ON M5A 2S3 캐나다)

우리가 방문한 교회는 하디가 토론토 의과대학 재학 시절 다니던 ‘St. Luke's United Church’이다. 이교회의 위치는 과거 토론토에서 가장 번화했던 칼턴스트리트와 쉐르본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당시 이 교회 교인이면서 캐나다의 백화점 왕이라 불린 심슨의 헌금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으며, 내부는 둥그런 극장처럼 웅장하고 멋지게 지어졌었는데, 지금은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통해 과거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 교회는 한국과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데, 하디를 비롯해 세브란스병원과 한국에 의과대학을 처음으로 세운 에비슨이 다녔으며, 한국전쟁 때 많은 원조를 보냈고, 1962년 한인들을 위한 교회 내에 채플을 만들기도 했으며, 우리를 안내하는 유영식교수님도 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셨다 한다.

유 교수님이 하디가 이 교회를 다녔다는 것을 찾아냈는데, 이를 찾을 때 주변의 모든 교회들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하다, 어느 날 한 문서를 통해 자신이 다니는 이 교회가 바로 하디와 에비슨이 다녔던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깜짝 놀랐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교회의 발전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와 초기 교인들과 함께 지은 ‘선교적인 교회(Missionary Church)’를 거쳐, 목회자가 열심히 목회하는 ‘목회적인 교회(Ministry Church)’로, 그 다음은 현상을 유지하는 ‘현상유지 교회(Maintenance Church)’로 그리고는 ‘박물관 교회(Museum Church)’로 옮겨가는데, 현재 캐나다 교회가 마지막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한다. 교회 발전 역사가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될까? 정말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이 과정을 거칠까? 상당수는 맞는듯하지만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맞는 이야기가 아니길 바란다. 

하디가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과 나누었던 사랑의 속삭임이 무엇이었을까? 이 예배당에서 의료선교사로서 확신하고 조선으로 선교를 나갈 것을 결심했을 텐데! 어떤 분은 하디가 장로교 배경의 선교사로 조선에 왔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이야기이다. 

하디가 살았던 토론토 집

하디의 토론토 의대 재학 시절 머문 집 (245 Carlton St, Toronto, ON M5A 2L2 캐나다)

다음 방문 장소는 하디 부부가 대학시절 살았던 집터이다. 이 집의 위치는 St. Luke's United Church에서 동쪽으로, 칼턴스트리를 따라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곳이 하디가 살던 집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당시 하디가 사용했던 전화번호부를 추적해 찾았다 한다.

하디의 집 건너편에 서서 집과 거리를 바라보며, 집에서 나와 교회와 학교 등을 부지런히 오고 가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또한 가정생활은 어땠을까도 상상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니 어쩌면 조용히 일어나 간단히 시리얼을 먹고 부지런히 학교로 달려가 공부를 하다,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일을 하고, 늦게 집에 돌아와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드는 일상을 지냈을까? 혹시 아내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한 것은 아닐까?

교회와 집이 있던 길이 당시에는 번화가였다고 하는데, 그럼 집세가 비쌌을 텐데, 부유하지도 않았다는데,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했을까? 현재 미국에서는 의대생들에게 학자금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대출해 준다는데, 하디 당시에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넉넉하지는 않아도, 학교 다니며 사는 대는 어려움이 없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졸업하고 바로 선교사로 나갔는데, 그 은행 빚을 어떻게 갚았을까? 혹시 공부를 잘 해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도 받으며 학교를 다닌 걸까? 그의 학비를 도와주는 자선가가 있었나? 어쩌면 유 교수님께서 전혀 아니라고는 했지만, 남들 모르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방법? 수많은 상상을 하는 동안 얼른 오라는 일행들의 전화에 미소를 머금고 돌아섰다.

교회와 집 사이에 에비슨이 차렸던 개인병원 자리도 둘러보았다. 시간과 여력이 된다면 에비슨에 대한 내용도 돌아보고 함께 나누면 참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하디와 에비슨이 졸업한 토론토 의과대학으로 향했다. 

의과대학 안에서

토론토 대학과 의과대학과 (1 King's College Cir Toronto, ON M5S 1A8 캐나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하디가 졸업한 토론토 의과대학이다. 이곳은 하디의 집에서 서쪽으로, 다니던 교회 방향으로 약 2.5km, 걸어서 약 30분정도 떨어져있다. 

토론토 대학 안내는 토론토 대학에서 예배학으로 ph.D. 과정에 있는 박해일 목사님이 했다. 그와 함께 우리는 하디가 의학공부를 한 곳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그가 꿈꾸는 의사, 그가 헌신하기로 한 선교지 조선을 위해 공부했을 토론토 의과대학. 우리가 도착한 의대건물은 아주 멋지게 디자인된 건물인데, 하디가 다니던 당시의 건물은 아니라 한다.

건물로 들어가 의대 역사 설명 자료가 잘 준비된 곳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1800년 후반부터 1900년 초반까지의 의대 졸업생들 사진이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토론토 의대 역사 설명 자료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난 졸업생 사진 속에서 하디를 찾아 헤맸다.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설명을 다 듣고, 하디를 선교사로 파송했다는 당시 YMCA에 대해 설명을 듣기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다가,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찾을 때까지, 당시 졸업생들 사진 속에서 하디를 찾아 헤맸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 찾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며, 졸업생들 사진을 찍어 두었다. 지금은 급한 마음에 찾지 못한 것이고, 화면으로 차근차근 찾으면 분명히 찾을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사진이 없다. 분명히 찍었는데. 옆 동네면 달려가련만.

하디가 의료 선교사의 길을 결정한 것이 언제이고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민혜숙씨의 「세브란스 병원 이야기」를 보면, 의대를 졸업하기 전 당시 북미에서 “600-700명당 의사가 한 명인 상황 속에서 개업을 할 것인가, 의사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개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다 해외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다. 또한 초기 그의 선교를 지원한 의대 YMCA는 하디의 제안으로 만들어졌고, 에비슨이 그 선교회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한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하디의 성격이 차갑고, 아주 내성적이었다는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하디가 공부하고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예배했을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환경은 다르다 할지라도 하디도 이 길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하게, 더위나 추위와 싸우기도 하며, 때로는 깊은 사색에 빠져 걸었을 것을 상상하며, 지금 내 옆을 하디가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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