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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알임봉대 목사(국제성서박물관 관장)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벨리알)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나 1:15)

나훔 1장 15절은 히브리 성경에서 2장 1절로 되어 있다. ‘볼지어다’는 히브리어로 ‘힌네’인데, ‘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감탄사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는 히브리어로 ‘메바세르’이다. ‘메바세르’는 “소식을 가져온다”는 의미의 동사 ‘바사르’의 분사형으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소식은 좋은 소식(삼하 18:31)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삼상 4:17)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좋은 소식을 말한다.

나훔 1장 15절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알리는 승전보이다. 솔로몬 시대에 작은 나라였던 앗수르는 분열왕국시대에 제국으로 발전하여 팔레스타인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고 기원전 732년에 시리아를 멸망시키고, 722년에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히스기야왕 14년째 되던 해 앗수르 왕 산헤립은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여 라기스까지 점령한 후 예루살렘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앗수르는 기원전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 제국에 패함으로써 멸망하게 되었다. 

나훔은 앗수르의 멸망이 모두 여호와에 의한 것임을 선포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훔은 특별히 앗수르의 멸망이 유다의 구원이라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다.

반면에 요나서는 니느웨의 구원에 대한 내용이 주제이다. 나훔서를 통해 하나님은 악한 자의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은 악인이 그 죄로 인하여 죽는 것보다 돌이켜 회개함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다.

나훔서는 특정 민족의 멸망이라는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읽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죄를 범하면 심판하시는 분이시고,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선을 행하면 구원하시는 분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라는 말씀에서 ‘악인’은 ‘벨리알’인데, 어원적으로 “더 이상 올라 올 수 없는 곳”, 즉 ‘스올’을 연상시킨다. ‘벨리알’은 지옥의 권세와 관계를 맺은 존재로 불량배나 악을 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구약성경에서는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의 불량배들을 가리키기도 하고(삿 19:22) 온갖 악을 행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나 1:15)을 가리키기도 한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사탄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 6:15)
벨리알은 하나님께 대적하여 악을 행하는 자로 이스라엘 사람일 수도 있고 이방인일 수도 있다.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적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온갖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물리치고 유다를 구원해 주시면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셨다.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는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동시에 구원받은 자들이 지켜야 할 믿음의 사명이다. 믿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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