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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표적의 비밀대광교회 유강신 목사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1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2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3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5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6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7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8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9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10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 요한복음 2장 1~11

 

유강신 목사(대광교회)

왜 하필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이었을까? 특별히 한국교회처럼 음주를 금하고 있는 상황에선 다소 불편한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자칫 애주가들에게 음주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에서 굳이 이 표적을 첫 번째 표적으로 기록한 것은 이 표적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적들은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표적(세메이온 shmei’on)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를 계시해주는 표적들인 것입니다(요 20:31).

그러면 왜 예수님이 첫 번째 표적의 장소로 혼인잔치집을 택하시고 떨어진 포도주를 물로 만들어 주셨을까요?
 
천국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
여기서 혼인잔치집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혼인잔치는 모든 인간들에게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의 잔치입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잔치가 실패한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잔치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본래 처음 인간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에덴’이란 말 자체가 ‘기쁨’, ‘희락’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창 3:24). 낙원(천국)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이요, 심판이요, 저주요,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 시켜 주시려고, 즉 천국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었고(마 4:17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를 더 정확히 번역하면 ‘천국이 왔다’는 뜻임. 엥기켄이란 단어는 ‘이미 와 있다’는 뜻임)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천국복음’이었습니다(마 4:23 ; 9:35 ; 24:14). 성경 마지막에 기록된 내용도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국을 회복 시켜 주시려고 오신 분이신 것을 계시해 주시려고 일부러 첫 번째 표적을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 집에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라 보혈로 구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절대적 요소인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는데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은 물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엔 단순한 기적의 원료 문제가 아닌 깊은 구속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 먼저 돌항아리 여섯에다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돌항아리는 유대인의 정결예식에 사용하는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돌항아리의 물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항아리는 비어 있었는데 이는 당시 형식적인 유대교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항아리 숫자도 굳이 여섯임을 밝히는 것은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습니다(마 5:17).

예수님이 물로 만드신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하셨고, 또 포도주를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마 26:26~28).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증언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십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고센 땅에 있던 그들이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받기 위해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바른 것도 유월절 양으로 오실 메시아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으며, 유대인들이 매년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도 장차 오실 메시아의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주님이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외에는 죄 사함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갈 2:16).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하였습니다(갈 2:21).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율법을 지켰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이루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한 것”일 뿐이었습니다(롬 10:3). 인간은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갈 2:16 ; 롬 1;17 ; 엡 2:8).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이것을 보여주시는 표적인 것입니다.
 
절대적 순종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요 2:5). 그리고 하인들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하시자 즉시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가득 채웠고,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시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천국생활의 원리인 순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뱀의 유혹을 받아 자기도 하나님처럼 되려고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둘 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유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엔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생활방식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내 뜻, 내 욕망을 이루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을 도구화하게 됩니다. 신(神)을 내 욕망성취의 도구로 삼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입니다.
 
기도도 자기 뜻,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하면 기복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주님이 주기도에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기도해야 합니다(마 6:10). 신앙생활은 자기 욕망성취의 삶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눅 9:23).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한다는 뜻입니다(빌 2:8).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살게 됩니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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