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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察 후 立法하라

한병철 선생이 쓴 「피로사회」는 오늘 우리가 사는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불렀다. 이는 일종의 문명사적 진단으로,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사회’에서 이행한 사회의 지배 양식이다.

사회의 지배 양식에 대한 이행과정을 보면, 체벌사회-규율사회-피로사회- 근대자본주의사회-후기자본주의사회 순인데 ‘규율사회’란, 신체를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대중을 교화하던 전근대적 체벌사회를 대체하여, 정신적 규율을 통해 사람들을 사회에 순응하게 하는 근대 자본주의적 지배의 형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감시의 체계’를 통해 실현된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다”(롬5:13)는 바울의 말은 율법이 내면적 감시의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율법은 이스라엘 신앙사에서 문자 해독 층이 급증했던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제국 시대에 중요한 신학적 요소로 등장하였다. 율법은 문자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말의 종교가 작동하기 시작되는 것이다. 하여 율법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작동하는 종교적 장치다. 율법은 회당에서, 사랑방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적으로 되새김함으로써 생각 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하여 그렇게 자란 사람들을 율법 내면의 소리로서 생각과 삶을 감시함으로써 사회에 통합되었던 것이다.

한데 그러한 감시의 체제를 통한 규율사회가 아닌 피로사회가 지금의 우리네 삶을 통제하는 체계임을 말한다. 규율사회는 감시에 의해 ‘해서는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기를 규율하는 ‘부정성의 사회’였다면, 피로사회는 ‘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적 믿음’을 갖고 성과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의 사회인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감내하게 되며, 그중 일부는 병증을 드러내게 된다. 소진성 우울증 같은 질환 말이다. 만약 그렇게 우울증이 단순한 기분 상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는 잘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 즉 질환으로 나타나면, 몸과 정신이 반응한다. 몸이 스트레스 조절에 실패하여 무력감에 빠지고 우울 증상을 드러내며, 종종 자기조절체계와 면역체계가 약화 되어 당뇨나 심장질환 등 각종의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충격적인 (아동)성범죄가 연이어 터지면서 이들에 대한 법률적 응징을 강화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돌봄을 얘기하면서도 눈앞의 약자가 저지른 위험성을 과장하고 그를 적대시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 한 예가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 악마 담론이 부상하고, 그런 이들을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으로 사회 청정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이른바 형사 국가적 여론의 확산이다. 피로사회의 대안으로, 소진성 질환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 내적 가능성으로, 그리고 어쩌면 타자에 대한 가학성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내적 가능성으로, 성과(成果)의 예외지대를 자기의 일상에 설치하는 행위가 요구된다. 예컨대, 모든 행위를 하기 전에 ‘자기를 성찰한 후에 행동하라’는 것이다.

제33회 입법 회의가 열린다. 그동안 우리의 법은 체벌과 규율사회로의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발과 몸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있는데, 머리와 정신은 기원전 3세기 이전에나 있음직한 법 제도로 역행한 것이다. 아니, 제도가 아니라 입법을 한 사람들의 영적 진화가 기원전 3세기 이전에서 멈춘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감리교회의 법은 감시통제 장치로 작동하게 되었고, 결국은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규율과 체벌로 인한 극도의 피로 상태에 몰아넣었다. 우리는 지금 십 수 년 계속되는 교단 정치의 혼란으로 인해 ‘소진성 우울증’에 걸린 환자와 같다. ‘입법’ 소리만 들어도 이젠 짜증이 난다. 해봤자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크고, 2만 명이나 되는 목회자와 5600교회, 130만 교인들를 위한 법안이 조성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권력 장악에 유리한 항목을 강화 신설할까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리교회가 감리교회로부터 추방 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목에 건 올무다. 감리교회와 수백만 교인들이 퇴보한 법 때문에 자기조절체계와 면역체계의 약화로 영적 질병에 걸려 비틀대고 있다. 피로의 극치다. 더는 소진성 질환을 유발하는 법의 제정은 안 된다.

이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기 내적 가능성으로, 그리고 어쩌면 타자에 대한 가학성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내적 가능성으로, 성과(成果)의 예외지대’를 감리교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에게 허(許)할 때다. 모든 법률을 수정, 개정, 추가하기 전에 작금의 감리교를 ‘성찰’한 후에 입법함이 마땅하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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