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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1주년 맞는 감리회의 허와 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삼일절 노래 가사를 되짚어 볼 때, 과연 101년 전 우리의 선대들이 궐기하고 절규했던 절박하고 장엄했던 그 위대한 3·1운동의 ‘정신’과 ‘대의’가 지금도 올곧게 계승되어 “우리의 생명이요, 교훈”이라고 고백하며 지켜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감리회는 그간의 행보 속에 점철된 명암과 성패의 허(虛)와 실(實)을 엄정하게 검증하고 새로운 미래 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하겠다. 특히 1930년 12월 2일 ‘기독교조선감리회’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설립 취지 3대 원칙 즉,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조선적 교회’의 원칙이 제대로 정착되고 있는지 만약 향후 보완해서 성숙화를 도모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등 천착하고 입안해서 추진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우선 지난 100년을 개괄적으로 일별해 보면 100년 전 장감성(長監聖) 합쳐서 20여만 명이라던 신자 수가 지금은 50배에 달하는 1000만 기독교인 시대를 구가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경이적인 양적 부흥을 이룩했다. 그런데 정작 감리회의 최근 교세를 보면 133만 4178명(2018년 7월 기준)으로서 한국교회 1000만 성도 대비 13.3%에 불과하다.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복음을 가슴에 안고 제물포에 동시 상륙한 사실을 상기할 때 장로교회와 대비해 보면 엄청난 열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힐책을 면할 수 없다는 중압감을 금할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감리회는 감독회장·감독 선거에서 너무도 지나치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감독 선출을 위해 형성된 서클정치, 학연·지연으로 엉켜 있던 이합집산은 1966년 총회 당시 성화와 호헌, 정동의 3개 서클이 뒤엉켜 ‘계파충성심’에 투철한 200여 명의 총대가 2년여에 걸쳐서 31차례나 회기를 바꿔가며 112차례 투표를 하면서도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못했다. 결국 해를 넘기며 감독 외에 3개 연회에 ‘연회장’을 두는 법 개정을 선행한 연후에야 113차 투표 끝에 변홍규 감독을 선출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그 이후에 등장하는 금권선거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선거는 오늘에 이르도록 감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는 염치도 없는 ‘막가파식’ 쟁탈전이 미완의 장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정녕 멈춰야 한다. 선출된 후보자 직접 제비뽑기에 의한 당선자 선출방식 등을 참작,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선택의 마지막 시점에 와있다. 둘째, 감리회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3대원칙 중 하나인 ‘진정한 감리교회’의 정체성이 제대로 정착됐는지 검증해야 한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해 준 미감리회의 제도, 미합중국이 오늘날까지 세계 패권 국가로 건재하고 있는 자유·평등사상과 그들의 건국이념이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교훈을 찾고자 힘썼는가. 아니면 우리가 사색당쟁(四色黨爭)의 후예라는 수준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호하게 가려야 한다. 1630년 3월 아르벨라(Arbella)호를 타고 850여 명이 함께 신대륙으로 출항했던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를 성경이 다스리는 거룩한 땅으로 만들고자 악한 자의 통치를 막기 위하여 참정권을 교인으로 제한하면서 교인의 자격으로 신앙의 고백, 바른 생활, 그리고 회심을 요구했던 역사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서 지금부터 더욱 많이 배울 것을 제안한다.

우리 모두 웨슬리의 ‘성화와 완전’이라는 신앙의 강조점을 지키면서 뒤처진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이것이 향후 100년 다시금 풍부한 결실을 거두는 길임을 믿기에 그렇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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