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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史) 부인은 독립·애국신앙의 어머니”
  • 천안·공주=신동명 기자
  • 작성 2020.02.2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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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완 목사, 앨리스 선교사 기념관 건립 사업
전도부인 양성… 충남 1400교회 20만 성도 뿌리
30여 교육기관 설립해 독립운동가 유관순·오익표 등 양성

 

3.1운동을 천안에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타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영적 어머니였던 ‘앨리스 J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 1871~1972)’ 선교사와 그의 남편 로버트 아서 샤프 선교사(Robert Arthur Sharp, 1872-1906)의 동상. 맞은편에는 앨리스 선교사가 거주했던 선교사주택이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다. 하늘중앙교회가 천안·충남지역 선교역사를 한데 모은 앨리스 선교사 기념관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3.1운동을 천안에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타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 유관순. 일본 내 항일운동과 공주에서 3.1운동을 이끌다가 만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중 1922년 노령에서 서거한 독립운동가 오익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두 독립운동가는 사(史) 부인의 수양딸 그리고 수양아들이었다. 사부인이 직접 낳아 기른 영적 자녀들은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고, 사부인이 양육한 전도부인들은 태극기를 제작해 충청권 곳곳을 누비며 3.1운동과 독립운동의 불을 지폈다. 사부인이 시작한 교육·선교 사역은 충남지역 1400여 개 감리교회, 20만 명 성도들 믿음의 시초가 됐다.

 

새롭게 조명되는 사부인의 애국신앙
한국 이름 사애리시(史愛理施). 미북감리회 소속으로 1900년 조선에 파송된 ‘앨리스 J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 1871~1972)’ 선교사. 사람들은 그녀를 ‘사(史) 부인’으로 불렀다.

사 부인은 메리 스크랜턴 부인과 평일에는 이화학당 교사와 순회전도자로, 주일에는 상동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사역했고, 1903년 정동제일교회와 배재학교에서 사역 중이던 남편 로버트 아서 샤프 선교사(Robert Arthur Sharp, 1872~1906)를 만나 결혼한 후 1904년부터 감리회 선교관할지역인 충남지역 선교를 맡았다. 1905년에는 충청지역 최초의 근대적 교육시설인 영명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1906년 남편이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사 부인은 영명학교 인근(현 영명동산)에 남편을 묻고 본국으로 일시 귀국했다. 1908년 한국에 다시 돌아와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가마, 말, 자동차를 타고 대전·논산·강경·부여·보령·천안·안면도 등 충남 전역 구석구석을 누볐다.

공주 영명학교를 비롯해 영화여학교, 진광남학교 등 학교 20여 곳과 유치원 7곳을 설립했고, 독립운동가 유관순, 오익표, 감리교 최초의 여성목사 전밀라, 한국 최초의 여성 결찰서장 노마리아, 철도간호학교를 설립한 박한나 등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독립운동가 유관순의 영적 어머니였던 ‘앨리스 J 해먼드 샤프(Alice Hammond Sharp, 1871~1972)’ 선교사 흉상. 천안 하늘중앙교회 앨리스 선교사 기념카페에 있다.

앨리스 선교사 기념카페
지난 22일 천안 하늘중앙교회 앨리스 선교사 기념카페에서 만난 유영완 목사는 “3.1운동과 독립운동은 사 부인이 잔다르크와 같은 애국신앙을 심어준 결과”라고 했다. 유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하늘중앙교회도 사 부인이 1905년 전도한 유 씨 할머니 집에서 처음 드려진 가정예배에서 시작됐다. 1922년 천안 최초로 이 교회에 유치원을 세운 것도 사  부인이었다.

유 목사는 지난해 2월 교육관 완공 직후 카페 명칭을 성도들에게 공모했다. 사순절 기간에 맞춰 광주 양림동 에비슨 선교기념관을 둘러본 그는 지역교회의 시초가 된 선교사와 선교역사기념관이 마련된 것과 달리 1900년대 초 선교협약 당시 감리회가 맡았던 충청지역의 역사기록을 전시한 기념관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기념관 2층에 마련된 카페 에비슨에 앉아 기도를 하던 중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감동이 울렸다. 돌아온 주일 모든 성도들 앞에서 앨리스 선교사 기념사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전 교인들의 박수가운데 카페는 ‘엘리스 선교사 기념카페’로 정해졌다. 천안·충청지역 최초의 선교사 기념관 건립 계획의 시작이었다.

유 목사는 그동안 사 부인과 관련한 선교역사가 자세히 조명되지 못했던 배경에는 “후손이 없어 유품과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감리교회가 선교역사 발굴·조명과 계승에 무관심한 이유가 크다”며 “감리회 차원에서의 무관심으로 인해 일부 개체교회 차원에서만 진행된 것이 전부”라고 했다.

특히 “감리회는 뛰어난 역사학자와 축척된 연구도 많아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관련 사업이 추진 가능하지만,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는커녕 기념할 줄도 모르는 감사 불감증은 매우 심각하다”면서 “19세기 선교 분할지역과 비교해 보면 당시 감리교회가 관할했던 지역의 경우 선교기념관은 커녕 선교사묘역 조차 없는 곳이 많아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지난 22일 유영완 목사가 천안 하늘중앙교회 앨리스 선교사 기념카페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유관순과 앨리스 선교사 부부 동상 모형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안·충청, 최초의 선교사 기념관
사 부인은 40년 간의 조선선교 사역을 마치고 본국에 복귀한 후 홀로 양로원에서 지냈다. 그리고 101세가 되던 1972년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가 양로원 입소 당시 옷 두 벌과 성경 찬송 이외의 모든 물품을 언니에게 위탁했고, 이후 증손자인 데이비드(64)·스티븐(62) 솔로즈 형제가 보관해왔다. 유 목사는 지난해 임연철 박사를 통해 이들을 만났고, 임 박사의 저서 ‘이야기 사애리시(신앙과 지성사)’ 출판기념회와 사진 전시회에 이들을 초청했다. 유 목사의 선교기념관 건립계획을 전해들은 이들은 흔쾌히 유품들을 기증했다. 유품을 건네받은 유 목사는 유품의 영구보존·전시를 위해 품목 전체를 복제한 후 목원대 기독교역사박물관에도 기증돼 앨리스 선교사 기념홀이 설치됐다.

과거 사 부인이 거주했던 영명학교 뒷동산의 선교사 주택은 사실상 방치상태에 있다. 과거 영명학교가 매입을 위해 모금운동으로 1억 원 가량을 모금했지만 이마저 중단됐기 때문이다. 유 목사는 방치된 사부인의 선교주택을 보며 선교역사에 무관심하거나 알고도 방치하고 있는 역사를 대하는 감리회의 현실을 더욱 느꼈다고 했다. 유 목사는 사 부인이 본국 귀국 후 사용했던 재봉틀과 풍금을 추가로 찾아냈다. 사부인의 또 다른 유품은 현재 러시아를 거쳐 부산 입항예정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다.


“시대 아픔 끌어안고 희망 되어야”
유 목사는 현재 천안·충남지역 선교역사를 한데 모은 기념관건립과 사 부인의 선교정신을 이어받은 교육·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앨리스 선교사 기념카페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액 중도입국자녀 장학 사업에 쓰이고 있다. 중도입국자녀는 국내 결혼 이주여성이 입국 전 현지에서 출산, 외국에서 성장하다가 입국한 경우를 말한다. 교회는 위탁·운영 중인 천안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외에 천안시와 추가 업무협약을 맺고, 공교육 취학 전 이들을 맡아서 1:1 한글교육과 교과 교육 등 교육환경에서 소외된 이들의 교육을 돕고 있다. 현재 공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중도입국자녀의 숫자가 전국에 2만 명이나 되는데, 교회가 나서지 않으면 구제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 목사는 “사 부인은 생전 ‘내가 세운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훈련을 받아, 전도사와 교사, 전도 부인과 의사 그리고 간호사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했다”며 “교회는 사회 취약계층을 발굴해서 지원하는 등 시대와 지역사회 아픔을 끌어안는데 앞장서는 등 시대의 희망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선도해 나가야한다”고 덧붙였다.

천안·공주=신동명 기자  journalist.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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