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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철회 목사

4월 2일 현재, 미국에서만 코로나19 확진자가 22만 명, 사망자가 5천 명에 달하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방역을 잘해도 최소 10만~2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교회 문이 닫힌지는 오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과 거룩함으로 여기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전쟁 포로로 끌려갔다. 600년 후, 로마제국에 의해 또다시 파괴되고 유대인은 전 세계 디아스포라가 되어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으며 근 2천 년을 살았다. 이후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는 세워지지 못했고 지금도 그 자리에는 황금 지붕의 거대한 모슬렘 사원만이 세워져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환점은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다. 바벨론 때문에 더는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은 성경을 모으고 기록하며 회당을 세우고 그곳에 모여 말씀에서 떠난 것을 철저하게 회개한다. 그리고 돌판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유대인 마음과 삶에 기록되는 성경을 갖게 된다.

그동안에는 감사한 일이나, 반대로 죄를 지으면 성전에 가서 동물로 번제를 드리면 되었다. 예루살렘에 갈 수 없고 성전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기들의 죄를 덮어씌어 짐승을 불태우는 것만이 예배’라고 고집하지 않았다. 또한 성전이 사라지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면 유대인의 정체성과 신앙이 사라질까 염려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삶의 자리가 어디든 하나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사는 믿음으로 변화했다. 이 일로 유대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무서운(?) “말씀의 민족”이 되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선포하면서 선지자들은 멸망의 이유를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의 교만이나 로마의 잔인함 때문이라며 원망과 증오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바알신을 따르는 백성들의 죄 때문이라고 외친다. 유다의 멸망에서 철저한 회개를 외쳤고 돌판에 쓴 계명이나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마음 판에 새긴 계명이 될 것과 삶에서의 순종을 말했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이 중단되었다. 미국은 부활절은 물론 언제 다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재개될지 요원한 상황이다. “썰물이 시작되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Warren E. Buffett)”라는 말처럼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는 우리 자신과 섬기는 교회, 그리고 교인들의 믿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성전이 닫힌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이 코로나19 사태는 바이러스를 전파한 중국과 이단 신천지, 그리고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사회주의(?) 대통령 탓”이라며 비난하는 일은 가장 쉽다. 이는 우리의 책임을 면하고 여전히 우리를 의롭게 여길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우리가 정치인이고 신앙인이 아니라면 이 분석과 비난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문제를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판단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식의 비난과 책임 전가는 가장 잘못된 선택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외부의 적 혹은 원수를 만들어 놓고서, 가슴을 찢으며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때마다 “그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으며 의인인가?”라는 변명과 위안의 도구로 혹은, 우리를 단결시키는 도구로 이용한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비싼(?) 짐승을 끌고 가서 그 짐승에 자신의 죄를 덮어 씌우고 불태우는 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한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은 그런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씀의 진정한 의미와 실천을 이루지 않으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막 13:2)”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유대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백성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오히려 사탄과 원수로 낙인찍고 처형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여전히 의로운 지도자 그리고 거룩한 성전을 주장한다. 이뿐인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 ‘유대와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반드시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 예언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이려 한다. 유대인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2년 안에 느브갓네살 왕을 꺾을 것이라(렘 28:4)”는 하나냐의 거짓 예언을 더 좋아한다.

그 작디 작은 세균에게 전 세계는 마비되고 교회는 닫히고 죽음의 공포로 가득 차 있는 이때, 우리는,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교회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과 성령이 아니라 물질과 쾌락의 신인 바알을 섬기고 있음을 찾아내고, 문이 닫힌 예배당에서 철저하고 혹독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자.

이 시대 기독교와 특히 감리교회는 진정한 신학적 성경적 판단을 자기 욕망과 가치관 안에 가두어 놓고 있다. 교회 외부에 원수나 사탄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실제로는 자기 정치적 신념이나 물질적 육체적 욕망을 따라 행동하면서도 그에 대하여 비난을 받게 되면, 이것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확고하고 순수한 믿음 때문에 세상 혹은 대통령에게 수난과 박해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순교자 혹은 신앙의 희생양으로 ‘커스텀 플레이(costume play, 코스프레)’ 하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19 앞에서 교회가 이단, 사이비처럼 처신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공교회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이어야 한다. 지금은 교인들의 생명을 보전하고 세상을 구원할 때다. 교회가 생명을 지키기는커녕 전염병의 전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비기독교인들은 과연 교회에 대하여 희망과 감동을 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질문해보자. 오늘도 텅 빈 예배당에서 “이것이 누구 때문인가. 이는 모두 중국 때문이고 이단 신천지와 대통령 때문이다”라고 비난과 증오를 품을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사회주의 대통령에게 핍박받는 의로운 교회가 되는 것이며, 이런 박해를 이기고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주장하는 목사는 정말로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순교의 각오가 있는 믿음인 것인가.

혹자는 “노래방이나 클럽은 단속을 안 하면서 왜 교회만 예배를 못 드리느냐?”라고 분노한다. 이 말에 나는 더 절망한다. 목사나 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를 노래방과 클럽에 비교하는가. 노래방과 클럽은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는 곳이다. 노래방과 클럽을 경영하는 사람은 좋게 말해 생계를 위해, 단순하게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교회가 그런 곳인가. 클럽이 문을 여니까 교회도 열어야 하나. 이런 시대에는 노래방이 문을 열든 말든 교회는 앞장서서 재산을 팔아 사람을 살리고 전염병을 차단하고 섬겨야 하는 곳 아닌가.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우리 기독교와 교회 안의 물질주의 혹은 세속주의와 코로나19 전염병이다. 현 사태의 책임을 교회 밖에 누군가로 전가하고 우리의 의로움을 세상에 천명하고 싶은가. 우리가 이단 신천지와 다르다는 증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어느새 십자가와 멀어진 목사와 교회임을 고백하자. 목회 성공과 축복의 자부심으로 여기는 최고급 자동차를 팔아 마스크와 쌀을 사서 소외된 사람을 살리자. 예배와 모임이 없어서 시간이 된다면 소외된 이웃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는 자원봉사에 참여하자. 순교의 각오로 교회 예배를 주장하는가. 그런 각오로 교인들과 함께 작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구체적 행동을 하자. 지난주, 뉴욕의 한인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에게 도시락 배달을 자원했더니 자원자가 너무 많아서 순서를 기다리란다.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세상은 오히려 이렇게 생명을 구원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지금도 병원에서는 의료진들이 생명을 구하려고 쓰레기봉투 방호복을 입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한국 사회 혹은 세계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이다. 기독교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주일에 교인이 없는 텅 빈 예배당에 아내와 둘이서 예배를 드리며 정말로 설교자 혹은 집례자가 아닌 예배자가 되어 헌금위원도 했다. 이번에야말로 회개와 변화를 이루자. 코로나19로 닫힌 예배당은 우리에게 바벨론 포로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부흥하다가 돌만 남기고 사라진 소아시아의 일곱교회가 될 것인가의 전환점이다. 교인이 없는 교회에서 하나님과 단독자로 만나자. 이참에 진정한 교회관을 회복하자.

예루살렘과 성전이라는 게토(Ghetto) 안에 갇힌 유대교처럼 우리가 외부에 적을 만들고 그들보다 의롭다고 착각하며 교회 울타리에 갇혀 있다면 그 울타리를 허물자. 이번에 세상은 얼마나 변화했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교회와 목회자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음도 인식하자. 다 아는 것처럼 소리치지만 정작 우리 기독교만 변화되는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으로 돌아간다면 코로나19는 다시 한번,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축복이 될 것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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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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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훈구 2020-04-04 18:18:03

    코로나가 차목사님을 만나게
    하네요. 그동안 잘 지내고 있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글 잘 읽었다우.물신과 명예의 바알신을 숭배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수 글입니다.감사드립니다.서울의 유구 친구들에게 안부전하리다.   삭제

    • 영석 2020-04-04 12:28:54

      이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조금이나마 생각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Lim young ho 2020-04-03 23:59:45

        이 시대의 목회자들과 교회에 예언자적인 글 전적으로 동감하며 지금은 내 탓을 외치며 회개하고 돌아 오는 길 밖에 소망이 없습니다. 오죽 하시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허물고 흩어지게 하시듯 예배당 문을 닫으셨을까? 생각하며 통회 자복할 때입니다   삭제

        • 이복만 2020-04-03 22:22:40

          차철회 목사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좋은글 우리들 마음에 깊이 다가오네요.
          뉴욕이 매우 힘들다던데 힘네세요.   삭제

          • 이복만 2020-04-03 22:20:20

            차철회 목사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귀한글 우리들 마음에 깊이 새겨 집니다.
            뉴욕이 매우 힘들다고 하던데 힘네세요.   삭제

            • 이종명 2020-04-03 10:01:22

              현 상황의 정곡을 찌르는 깊이 새겨야할 말씀입니다. 감리교회 지도자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어찌 그리 가볍고 얕은지...   삭제

              • 감리교인 2020-04-03 08:02:34

                가슴을 움직이는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삭제

                • 코로나19는 2020-04-02 23:58:03

                  현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지금 일부 한국교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타버린 곳에 새싹이 나듯이 이 번 기회에 무너질 것은 다 무너지고 새로운 신앙의 운동이 일어나 새로운 교회를 세워가면 좋겠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참된 이치를 찾고 추구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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