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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전조(前兆)

먼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순수의 전조’ 앞머리를 읽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블레이크는 산업혁명이 할퀴고 간 황폐한 영국의 현실을 고통스레 통과한 시인이다. 그는 유아 노동에 동원된 어린 굴뚝 청소부들의 울음이 타락한 교회를 섬찟하게 만드는 것을 보았으며, 젊은 창녀의 저주가 결혼 마차를 영구차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만나는 얼굴마다” “비탄의 흔적”을 보며 ‘징후’를 잘 읽어내는 시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예언’이라고들 하지만, 징후는 예언이 아니다. 앞의 ‘순수의 전조’ 앞머리에서 “주인집 대문에서 굶어 죽은 개가 그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생멸의 공포 속에 가둬버린 ‘코로나19’도 하나의 징후다. 그것이 탐욕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지구 인간의 ‘멸(滅)’을 지향하던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좀 더 나은 ‘생(生)’을 지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는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 분명 그러하다. 어디 그뿐일까? ‘임계장’이라고 불리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 노동자인 아파트 관리원이 입주민의 폭행에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하는 사건도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불안한 징후다. 이런 것들이 사회적인 징후들이라면, 구교의 신부가 신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기획보도나, 개신교의 아무개 목사가 몇 교회를 돌아다니며 여러 명의 여자 교우들을 농락하고 성추행했다는 ‘무슨 무슨 수첩’의 내용도 몰락하는 교단의 명징한 징후가 아닌가. 징후는 반드시 과녁을 향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저주의 몰락이던지, 아니면 기사회생인지는 징후가 곧 다가올 불길한 예고라는 자각의 강도를 따라 그 색깔을 달리한다.

작금의 종교, 그중에서도 내가 속한 교단이 직면한 아주 불길한 징조는 앞에서와 같은 징후를 통해 곧 다가올 현실의 불길한 예고를 알아채지 못하는, 또는 불길하게 여기면서도 아롱아롱 덮고 가는 ‘자각의 부재’를 통해 더한층 불길한 징조로 보인다. 조직의 자정 수준이 거의 손 마른 병자(마 12:10)의 형국이니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무개 목사는 가는 교회마다 같은 병색을 드러냈다고 한다. 더욱이 수명의 피해 당사자들이 교단에 탄원했음에도, 불길한 징후를 자각하고 저주받을 현실을 고통스럽게 받아야 할 조직의 인사들이 허깨비처럼 굴었다.

이번 아무개 목사의 습관적인 성 추문에 대한 보도 사태는 ‘전조’나 ‘징후’를 넘어 이미 반복되고 있는 감리교 ‘현실’이고, 그간 우리 감리교가 비극의 다양한 징후들을 깡그리 무시해 왔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보시라! 누구 하나 ‘내 탓이요-이게 다른 종교에서 쓰는 용어라 불편하면 뭐 다른 말로 얼마든지’하고 엎드리는 위인 하나 없고(그런 건 고사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입조차 봉쇄하는), 교단을 개혁하려고 감독이나 감독 회장에 나서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인물들 가운데 ‘맞다. 이런 게 감리회의 추한 현실이다. 내가 모든 오물을 뒤집어쓰며 쓸고 닦겠다’, 이러고서 욕이란 욕은 다 걷어 먹을 각오로 덤벼드는 이 하나 없지 않은가.

“주인집 대문에서 굶어 죽은 개가 그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는 블레이크의 선언은 시인의 허사(虛辭)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으며, 개체의 불행은 대부분 관계의 산물이다. 주인이 잘 보살폈는데 그 집 대문에서 개가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동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주인의 태도가 무려 “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후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럴 진데, 이제 감리교단이 불행의 징후들을 지나 더 끔찍한 현실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텐가?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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