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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 김목화 기자

가족들은 광화문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늘 알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감리회 본부’ ‘감리회관’ 앞을 지날 때다. 요즘엔 신축 빌딩이 워낙 많아 이제는 오래된 빌딩에 속하고, 그만큼 잘 나가는 건물도 아니지만 10년 전만 해도 광화문에서 으뜸가는 빌딩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딸들을 차에 태우고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감리회 본부’라며 일러주셨고, 어린 날의 난 ‘감리교 본부’라고 쓰인 건물의 사인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상에 빠지기도 했다. 청계천 쪽으로 있던 사인이 없어졌을 땐 속상했다. 건물 4면에 왜 ‘감리교 본부’라고 써있지 않나 생각도 많이 했다.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감리회 본부에 입사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자부심을 갖던 그 빌딩에 들어가 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보다 실망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했다.

아버지는 업무 때문에 서울 시내를 자주 왔다 갔다 하시는데, 늘 감리회 본부 앞을 지나가실 때마다 전화를 하셨다. 건물 안에 있든 없든 큰딸이 감리회 본부에서 일하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집에서 감리회 본부에서 일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광화문네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감리회 본부는 우리집에게 자랑스러운 감리회의 상징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 길, 그 한복판에 있는 감리회 본부가 우리 집안에서만 상징적이진 않을 것이다. 감리교인이라면 모두 그 빌딩을 보고 자부심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감리회 본부. 영문으로도 적혀 있는 감리회 본부(Methodist Center)이기 때문에 회관 앞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10번, 100번, 1000번 고민하고 또 고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감리회 본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감리회 본부’는 광화문에서 잘 안 나가는 건물이 되어 버렸고, 온갖 ‘돈 잔치’로 물들어버린 소돔과 고모라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같은 연대(80~90년대)에 지어진 광화문의 다른 고층빌딩들은 외관 리모델링을 대부분 다 마쳤고, 진행 중이다. 1987년 완공되어 당시 서울시 건축상 금상까지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한화빌딩은 최근 지속 가능한 친환경 태양광 빌딩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1970년 완공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종로 삼일빌딩도 최근 외관 공사에 나섰다. 1991년 5월 준공한 광화문빌딩은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비슷한 역사를 지닌 주변 건물들과 달리 제일 못난 건물이 되었다.

왜 감리회 본부는 1990년대부터 걷은 본부 부담금과 임대 수익금으로 건물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수백 억에 달하는 헌금(본부 부담금)과 수익금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된 걸까. 왜 감리회 본부는 ‘본부 부담금’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조직이 되었을까. 왜 감리회 본부는 임대차 수익으로 자생하지 못하고 본부 부담금으로 전국 성도들에게 기생하게 되었을까.

하루 평균 약 200만 대의 차량이 지나는 광화문광장 일대에 우뚝 선 ‘감리회관’을 다시 자랑스럽게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본다. 감리회가 진정으로 변화되어서 감리회 본부에 앞다투어 입주하고 싶어 하고, ‘감리회관’ 앞을 지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감리교회 다니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본다.

김목화 기자  yesmoka@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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