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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의 교회 교육김태원 목사(한빛교회)
   
▲ 김태원 목사(한빛교회)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안겨다 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계속해서 대변혁을 일으킬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 중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교육의 영역이다. 벌써부터 모든 교육이 온라인으로 시행되어 교육 방식이 현장중심에서 U-러닝(Ubiquitous learning :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여 자유롭게 수행되는 교육)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 예배와 교회 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교회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드렸으며 교회교육도 전통적인 대면 교육방식에서 비대면·언택트(untac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없이 갑작스럽게 맞이한 교육환경의 변화는 교회의 교육정책을 판단하는 담임목사와 그것을 현장에 적용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을 매우 당혹게 만들고 있다.

 

대면과 비대면
비대면 온라인 교육은 전염병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서 기존의 대면 교육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방법으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경계가 없고 언제든 확장과 반복이 가능하며 편집과 기록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교육의 효율성으로는 이 방식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변화에 발맞춘 첨단 교육의 효율성으로 꽤 오래전부터 모든 교육현장에서 어떤 부분의 교육은 온라인 사이버 교육으로 유도되어 왔다.
그러나 교육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이나 정보만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인격을 배우기 위해 교사와의 만남이 필요하고 때로는 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와 현장이 필요하다. 교육은 만남이며 관계이고 또한 경험이고 참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에서 실제로 배우는 것은 그가 가르치려 들 때가 아니라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학생은 선생님의 살아있는 어투, 표정, 몸가짐, 습관, 무의식적 반응, 학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 심지어 그의 말이 아닌 침묵을 보며 은연중에 배운다. 이것은 교육과정에 있어서 드러난 커리큘럼이 아니라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그런데 비대면 온라인 교육은 교육의 현장성과 대면적 현존의 인격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에 있어서 교회교육의 방향은 이와 같은 온라인 비대면 교육방식의 약점을 교회가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장소에서 공간으로
전통적인 교육에 있어서 학생들의 학습을 위해 특정한 장소를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배움은 반드시 특정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수학습 공간은 장소를 뛰어넘을 수 있다. 장소는 위치와 물질성을 갖고 있다. 위치와 물질성 때문에 장소는 공간을 제한시킨다. 요컨대 위치와 물질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장소적인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 소통 공간, 사이버 공간, 문학공간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사이버 공간은 교사와 학생 간의 좋은 교수학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기독교 교육학자 데이빗 스튜워드는 기독교 교육현장을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한다. 그것은 바로 특정한 장소가 있는 물리적 공간, 정서적·심리적 공간, 영적인 공간이다. 여기에서 물리적 공간은 장소를 필요로 하지만 정서적·심리적 공간과 영적인 공간은 장소를 초월한 공간이다. 온라인을 통한 사이버 학습공간은 심리적이며 정서적, 영적 공간이 될 수 있다.

사실 기존의 교실 중심의 대면 교육도 교수학습에 있어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역으로 약점도 많이 갖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자칫 잘못하면 교사 중심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온라인 교육을 위하여 기독교 교육의 콘텐츠를 영성적으로 개발한다면 주입식 교육으로 흐를 수 있는 교실 중심 교육의 약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인류는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의 교육은 모바일이 만들어낸 네트워크와 빅 데이터, 멀티 클라우드와 사물 인터넷 같은 기술로 점점 혁신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20세기와는 다르게 비형태적이며 비질료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이며 비물질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유형적 가치보다는 무형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는 콘텐츠 영성을 강조한다. 콘텐츠라는 말은 본래 ‘내용’이라는 말이다. 콘텐츠 영성이란 전술한 바와 같이 유형이 아닌 무형의 영성, 물질적인 것이 아닌 비물질적인 영성을 의미한다.

교회교육도 유형적 가치보다는 무형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 교육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기독교 교육적 콘텐츠 영성도 개발한다면 대면적 장소 교육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전통적 교육방식의 좋은 대안으로 인지될 것이다.

 

블렌디드 러닝
비대면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교육방식을 혼합학습이라 한다. 지금 학생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다가 얼마 전부터 격주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방식을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이라 칭한다.

블랜디드 러닝은 온라인으로 행해지는 비대면 교육방식의 약점도 보완해주면서 교실 중심의 주입식 교육의 피폐를 줄여주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혼합 교육은 비대면 온라인 교육 특성과 교실 중심의 대면교육 방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혼합 교육은 이중적이며 역설적이다. 영성교육학자 파커 팔머는 그의 책 ‘Courage to teach’에서 가르침이 일어나는 공간의 이중성을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공간은 개방적이며 동시에 제한적이어야 한다. 둘째, 공간은 환대적이며 동시에 부담을 갖게 되는 긴장을 띠어야 한다. 셋째, 공간은 개인의 목소리와 그룹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공간은 고독과 그리고 공동체성을 동시에 지지하여만 한다. 다섯째, 공간은 침묵과 말을 동시에 환영해야 한다. 팔머가 말하는 학습공간은 이렇게 역설적인 이중성을 띠고 있다.

파커 팔머의 역설적 학습공간을 잘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의 교실 공간을 혼합하여 교육시키는 블랜디드 러닝 방식이다. 사실 비대면 온라인 교육방식의 또 하나의 약점은 자칫 잘못하면 공동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 형성은 학생들이 교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과 자신이 교사가 가르치는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연결과 소속감은 온라인 상으로도 이루어지지만 현장에서 만날 때 더 잘 이루어진다.

마틴 부버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만남이다. 가르침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온라인 상으로 계속 교육한다 하더라도 가끔은 대면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연결성과 소속감이 유지될 것이다.

기독교 교육학자 존 웨스트 호프는 교회 교육의 방향이 학교 수업형으로 흘러가서는 안 되고 신앙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러운 사회화를 통해 신앙이 학습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교회 교육에 있어서 비대면 온라인 교육의 방식이 학교 수업형 형식을 띠게 된다면 이것은 공동체성의 약화를 초래할 것임이 분명하다.

신앙공동체를 통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신앙과 사랑의 분위기다. 그중에서도 교사가 자신이 복음을 가르치려고 하는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 사랑은 접촉과 연결, 관심과 배려로 이루어진다. 에릭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추상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또한 존경하고 그가 사랑하는 대상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만일 교사가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 학생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그 학생의 상황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데도 아이들과 늘 연결되며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것이 바로 교사의 사랑이다.

파커 팔머는 교회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딱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신앙과 인격의 통합성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교회학교 교사는 외적인 나타남과 내적인 실체가 서로 일치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나쁜 교사와 좋은 교사를 구분한다. 나쁜 교사의 첫 번째 특징은 그들이 가르치는 주제와 그들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좋은 교사는 자신과 자기가 가르치려는 주제를 늘 일치시키려 연결시킨다. 그러한 주제와의 일치는 방법보다는 그들의 소명과 마음속에 존재하거나 혹은 학생의 영혼을 정말로 사랑하는 그들의 성실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온라인 비대면 원격 교육에 있어서 부족한 공동체성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가? 그것은 교사가 학생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사가 학생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연결과 접촉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며 학생들에게 나를 저분이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온라인 교육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교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학생들과 어떻게든 연결하고자 하는 사랑의 성실성이 아닐까?

 

가정 기독교 교육의 강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기독교 교육이 교회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 대안으로써 가정 중심의 기독교 교육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로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는데 하나는 가정에서는 부모를 통한 대면 기독교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 재택근무 확대, 개학 연기 등 부모와 아이들이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기회가 증가한 것이다. 기독교 교육학자 호레스 부쉬넬은 가정을 하나님의 은총이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은총의 매개’라고 하였다. 브루너는 가정은 하나님이 그의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공동체 학교라고 규정하였다. 신명기 6:1~9에 나타나 있듯이 가정은 신앙교육의 중요한 매개체다. 가정을 통하여 신앙이 전수되고 교육된다. 교회만큼 가정에서의 기독교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기독교 교육이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는 교회와 가정이 서로 연계되는 기독교 교육이 필수적이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교회학교 교사를 대신하기 때문에 교회학교 교사가 주축이 되어 온라인 공간을 이용해 기독교 교육 콘텐츠 영성을 부모에게 제공하든가 혹은 일시적으로 단기간에 교육시킬 수 있는 가정 기독교 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해 부모에게 전수시키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가정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의 신앙적 분위기이다. 특히 부모는 가정의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지 않고 개방적이며 사랑이 넘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정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존 웨스트호프가 주장했듯이 학교 수업형 교육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가정의 신앙적 분위기 속에서 종교 사회화를 통한 자연스러운 신앙 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가정을 교회 안에 있는 작은 교회학교로 가정한다면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규칙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은 교육방법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드리는 예배는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대화를 통한 예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시대나 복음의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마다 복음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지금 시대에 걸맞게 이미 전 세계적으로 대학이나 교육기관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에 걸맞은 교육방식이 개발되어 교육현장에서 사용되도록 유도되어 있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매우 느린 속도지만 기독교 교육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교육방식은 더 많이 개발되어 나아갈 것이다.

다만 우리가 명심해야 될 점이 한 가지 있다. 모든 문명의 발전이 진화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잃게 되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많은 교육방식이 발전되겠지만 그것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발전하는 기술의 엔트로피적인 부작용인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교육의 효과는 증대하겠지만 그로 인해 교육의 비인간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교회는 그러한 부작용도 대비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는 책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는 이미 질병과 가난을 거의 극복해 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지금 그 말은 우리에게 너무 황당하게 들린다. 아마도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그 책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아주 미세한 바이러스 하나로 인류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우리는 지금까지 똑똑히 보아왔지 않았는가?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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