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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의 삶을 사는 정용치 목사께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십 년 넘게 감리회 영성 훈련 ‘엠마오 가는 길’에 참여했다. 참여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그데리다가 생각나곤 했다. 아마, 그가 철학적 사유로 삼는 상징이나 기호가 ‘엠마오 가는 길’의 상징 언어인 ‘데 꼴로레스(De Colores)’와 닮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데리다에 의해 주도된 ‘해체주의 이론’ 핵심이 다양화를 담보한 ‘데 꼴로레스’와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해 굴러왔다. 흑백 TV처럼 검은 것 아니면 흰 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컬러 에이지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한 다양성의 시대라는 말이다. 

유대 율법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법은 오로지 흑 혹은 백이다. 여기서 완고한 율법주의가 태어난다. 그러나 보라! 우물가의 여인이 물 한 바가지를 인연으로 해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이야기는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당시 여인들은 이방인에게 물을 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더구나 이방 여인이 예수님에게 말을 건다. 이것 또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그것도 이방인 남자에게 뭘 묻는다는 것은 제3의 문턱을 넘어 완고한 율법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선생님. 어디서 예배를 해야 합니까?”(요 4:19~26). 이 얼마나 불순한 물음인가? 지금껏 아무도 이런 물음을 묻지 않았고, 물을 생각도 갖지 못했다. 오로지 남쪽의 예루살렘이거나 북쪽의 벧엘, 둘 중 하나였다. 그때까지 제3의 예배 장소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흑과 백으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제 더는 예루살렘도 아니고 벧엘도 아니다. 남쪽 어디도 아니고 북쪽 어디도 아니다. 어디나 중심이고 어디나 변두리니, 바깥과 안쪽을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말씀 아니던가? 선 아니면 악, 진실이 아니면 허위, 정의가 아니면 부정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세상 속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의미 아닌가? 이것을 아주 또렷하게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한 것과 같다. “이제부터는 완고한 흑백 논리의 삶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다양하게 살아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조차 다양하라.”

‘엠마오 가는 길’은 십 수년간 감리회 영성 수련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데리다의 다양성 즉, 제3의 길로 21세기의 교회가 나아갈 방향 제시와 같았다. 꼭 교회가 숫자 적으로 불어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목회가 된다는, 작은 교회 목회도 적은 숫자의 교인이라도 행복하게 자존 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교회의 해체와 미래교회의 시점을 견인하는 영적 샘이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면서 ‘엠마오 가는 길’은 본래의 다양성과 제3의 길에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교회 성장의 패러다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가난한 교회들과 목사들이 하나둘 떠났고, 영성 훈련은 뼈대가 굵은 자본의 시스템 안으로 흡습 되었다. 이제 ‘엠마오 가는 길’은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겨우 그 시스템, 관성적으로 작동하는 틀만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그것마저도 멈춰버렸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엠마오 가는 길’을 감리회 일영 연수원의 프로그램으로, 감리회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영성 훈련으로 처음 소개했을 뿐 아니라 온몸을 바쳐 참신한 폭발력을 발휘했던 정용치(전 연수원장) 목사가 임파선암에 걸렸다. 그가 보내온 이메일  제목은 ‘안부’였다. 안부(安否). 지극히 편치 않으신 분이 내게 안부를 물으시니 이 또한 ‘엠마오 가는 길’의 데 꼴로레스다. 

정 목사는 암세포로 인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게 아니다. 어디든 하나님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며,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 없는 삶이 없으니, ‘삶과 죽음’이라는 완고한 두 경우만의 세계를 뚫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띄우는 제4일의 삶을 사시는 거다. 멀리서 십수 년 전 엠마오 동산에서 가슴설레며 외쳤던 기도의 인사를 정용치 목사님께 올린다. 승리하시라, 저 또한 그 길을 따르리니! De Colores !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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