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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제로1077호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의미의 신조어 ‘시발비용’이 세상을 떠돈 지 5년 가까이 되었다. 신조어 ‘시발비용’의 어원은 ‘비속어’와 ‘비용’의 합성어다. ‘홧김에 발생한 소비’라면 곧 시발비용에 해당된다. “월급은 한 달 동안 모멸을 견딘 대가”라는 직장인 공통의 인식에서 신조어 ‘시발비용’은 등장 당시 폭발적인 ‘공감’을 일으키며 급속히 확산됐다.

‘비참한 노동현장’이라는 절대다수 직장인들의 공감은 자영업 창업시장으로 연결되는데, 불합리한 직장 상사를 버린 이들 앞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진상고객’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국민 경제활동의 양대 축을 담당하는 자영업자와 직장인 간에도 ‘갑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처럼 다수의 공감이 각종 이슈를 넘어 사회 이슈를 낳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세상이다.

사실 공감능력은 인간만이 갖는 특성은 아니다. 개와 원숭이에게도 곤경에 빠진 동료를 돕는 습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인간이 미물로 여기는 쥐도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원만한 사회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공감’ 능력이다. ‘국가 권력 획득’이라는 유일의 목표로 모인 정치 현장에서 국민의 삶 속 소통을 내세운 ‘공감’을 최우선에 내세운 지 오래고, 기업 마케팅에서 조차 소비자의 시선으로 상품을 바라보고 평가하기 위한 필수요소로 ‘공감’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의 ‘공감’이 모든 분야에서 기본이 되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대해 전문가 집단이어야 할 한국교회는 ‘공감 제로(Zero)’에 가깝다. 특히 감리회 공동체 안에서 ‘공감’은 ‘승자독식’이라는 극단의 교권 경쟁 속에서 사치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다. 

공감하는 능력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대해 같이 웃고 울어 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훈련은 고사하고 교권 경쟁적인 선거만이 중요한 관심사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환경에서 감리회 본부는 지역교회와 선교현장, 지역교회는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공감 능력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의 동기와 예상되는 반응 등을 추적하며 적절한 대응까지 분석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그래서 공동체의 공감 능력을 통해 구성원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와 방향까지도 예측 가능한 것이다. 반면 공감능력을 잃은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행동변화에서 시작해 미래 발전 가능성 등 어느 것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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