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감리회 사회선교 현장을 찾아서
KTX 여승무원 해고 사건을 아시나요? (feat. 재판 거래)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KTX 여승무원 해고 사태’. 

KTX 여승무원의 파업은 그들이 2018년 일터로 돌아가기까지 12년이 걸린 최장기 생존권 싸움이었다. 전말은 이렇다.

2004년 KTX가 운행을 시작할 당시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는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고 홍보하며 여승무원들을 채용한다. 조건은 계약직으로 2년간 고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것이었다. 승무원들은 사실상 공사 정규직으로 생각하고 입사했다. 실제 업무도 정규직과 동일했기 때문에 직접 계약이 성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공사가 계열사 직원으로 위탁계약을 맺으려 했다. 철도공사는 ‘홍익회’ 산하의 ‘철도유통’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철도유통은 다시 ‘KTX 관광레저’라는 계열사로 고용계약을 인계한다. 전형적인 위장 도급 방법이다. 이에 여승무원들은 공사 정규직과 같은 안전 관련 업무를 하는데도 자회사로 옮겨 다니게 한다며 계약을 거부하게 된다. 위탁계약을 맺으면 또다시 어떤 업체로 계약이 인계될지 불안한 신분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고용시한 만료일인 2006년 5월 31일, 회사의 안을 거부한 여승무원 280여 명 전원을 해고한다. 그것이 12년이라는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 될 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상상 못 했다. 

2010년, 철도공사의 KTX 여승무원 해고는 “무효”라는 첫 법원 판결이 나온다. 파업을 시작한 지 4년 5개월 만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공사가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실질적 해고로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1년, 고법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2015년 11월 대법원은 이전의 모든 판결을 뒤집고 승무원들에 대해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옆에서 지켜보았을 당시 승무원들이 절망에 가까운 좌절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무원들은 1심 승소 후 회사 측에서 받은 밀린 임금에 이자까지 1억 원 넘게 내야 할 처지가 됐고, 이를 비관한 한 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그로부터 3년 후 2018년 5월, 분위기가 급반전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를 시도하는 데 KTX 판결을 이용한 정황이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후 코레일 노사가 다시 협의를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전국철도노동조합이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복직에 합의하면서 12년간의 기나긴 투쟁을 마무리한다.

‘고난함께’는 2006년 투쟁 시작부터 KTX 해고 승무원들과 연대했다. 그러나 싸움이 장기화되고 승무원들이 지치게 되면서 5~6년 동안은 싸움 중지된 것 같았다. 그 후 2015년 ‘고난함께’가 다시 그들을 찾아갔다. “아직 당신들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계속 기도하겠다”고 말이다. 고난함께의 방문이 불씨가 되었는지 승무원들은 다시 일어섰고, 다시 싸웠으며 2018년, 마침내 복직하게 되었다. 

 

전국철도노조와 코레일이 KTX 해고 승무원 복직에 합의한 2018년 7월 21일 13년째 투쟁을 이어온 KTX 해고 승무원들이 서울역 플랫폼 중앙계단에서 투쟁 해단식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고난함께 제공.

그들이 회사로 돌아간 후 어느 날 ‘고난함께’로 편지 한 통이 왔다. 싸움을 이끌었던 KTX승무지부 김승하 전 지부장에게서 온 편지다.

“KTX 승무원 투쟁 십여 년,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했던가요, 기나긴 투쟁의 굴곡이 바닥에 치닫고 있을 때 분명 기적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KTX 해고 승무원 싸움은 10년이 지났지만 처음과 같은 상황이 닥쳤습니다. 300명이 한마음으로 시작했던 싸움은 시간이 흐르면서 34명이 되었고, 그마저 더욱 거세지는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가 생기면서 33명이 되었습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 “철도의 꽃”들의 투쟁! 쏟아지던 관심이 당연했던 처음과는 달리, 지나버린 시간에 우리의 목소리는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퍼지지 않았고, 다 잘 해결되었겠거니 하며 잊어버린 사람들이 야속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거리에 서 있는데...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이 내가 자포자기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은 우리에게 작은 목소리를 보냈었습니다.

감옥 같이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이 바로보기 두려울 때엔 상상을 했습니다. 영화 속 슈퍼 히어로 같은 존재가 나타나 악당들을 소탕하고 나를 이 절망 속에서 구원해주는 속 시원한 장면들이 그것이었는데, 그렇게 막연하게라도 마음을 가볍게 갖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상상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저는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거짓말처럼 나타나 나와 함께해준 그 손길. 그 기적 같은 한마디가 저에겐 세상에 희망을 가지게 만들어준 시작이었으니까요.

‘고난함께’라는 이름 그대로 내가 지고 있는 고난을 함께 떠안고 걸어주겠다는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 자기 일이 아님에도 자기 일처럼 기도해주고 함께해주는 기적 같은 모습이 항상 존경스러웠습니다. 왜 나는 내 일로 겪기 전에 먼저 함께할 생각을 못 했던 것일까?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어려운 일들을 듣고 보았지만, 왜 행동할 생각은 못했을까? 그분들을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되고 또한 한없이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주위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달라졌습니다.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어두운 마음을 호소할수록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런 시작으로부터 커져간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로 결국 저희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쟁 시작 13년 만에 해고되었던 KTX 승무원 모두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기나긴 여정을 지나왔지만 끝까지 절망하지 않도록 붙잡아준 이들 덕분에 저희는 이렇게 기적이라, 승리라는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희가 받았던 기적을 만드는 손길을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고난을 겪고 있고, 그것에 함께하는 것이 저희가 받은 응원과 지지에 감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한 작은 손짓은 반드시 세상을 바꾸는 큰 힘으로 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버려지는 행동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타임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뉴스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