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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아이들을 변화시키셨죠"
향기로운 사람들 - 인천 방주교회 박보영 목사
2007년 12월 13일 (목) 14:05:25 정원재 동부연회기자 kjini@kmctimes.com

   
박보영 목사
   
 
문제아, 폭력배들의 아버지. 교회에 칼을 들고 강도들어온 십대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 교인으로 삼은 목회자.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는 이러한 자신의 헌신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자칫 잘못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지를 염려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 목사는 3대째 감리교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전 종교교회 담임)와 작은 아버지 박신원 목사(전 종교교회 담임), 아버지 박장원 목사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에서 교인들의 치열한 싸움과 반목을 보면서 마음의 문을 닦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의사의 길을 걸어가다가 39세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순간부터 그 만남이 너무도 놀라워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소유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과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려운 교회와 기도원에 다 나누어 주고 수중에 20만원만 들고 용산역 앞 작은 쪽방에 들어가 협성대학원을 진학하게 된다. 

졸업 후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자 조치원 산 속에 상여 보관소 옆 작은 판잣집에 들어가 2년 동안 기도와 성경을 읽게 된다. 그리고 안성의 우범지역에 시온성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1년여 동안 교인 없이 목회를 하던 중 어느 전도사님의 배려로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빌려 쓰게 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자는 날이 많았지 별로 아파트에 들어가 지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를 우연히 방문했다 빈집에 들어 온 10대 후반의 3명의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아이들과 예배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파트 문을 잠그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자, 당시 아이들은 본드와 환각제로 취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칼을 꺼내 박 목사를 찌르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박 목사는 자신을 위협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너희는 용서 받을 죄인인데 예수 믿고 용서받자”며 복음을 전했다. 아이들을 밤새 붙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박 목사는 아이들과 헤어져 교회로 돌아왔는데 수요예배 시간에 교회 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강도였던 3명의 아이들이 친구들 15명을 데리고 왔다. 그 일을 계기로 박 목사는 그때부터 길에 버려진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강도였던 아이들, 노숙자들과 교회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암기시키고 새벽기도를 드리도록 해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 때 아이들 붙들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의 헌신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도둑질을 계속했고 도둑질 한 돈으로 창녀촌과 지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교회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박 목사는 도둑질 한 아이들을 앞세워 일일이 피해를 입힌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때로는 술에 취한 주인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은 심각하지 않은 듯 자기들 끼리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도 여전히 아이들의 도둑질에 대해 사과하고 돌아오던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한 아이를 세워놓고 파이프 막대기로 힘껏 때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나를 10대씩 때려라. 대신 9대 때렸다가 마지막 1대라도 살살 때리면 다시 때리게 할 테니 힘껏 때려라” 고 말했다. 두 아이에게 20대를 맞았는데 박 목사는 너무 아파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너무 아파요 더 못 맞겠어요.”

박 목사는 세 번째 아이가 죄송하다며 때린 매에 허리 밑 꼬리뼈를 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됐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를 맞았고 그렇게 80대를 맞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인지 나중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박 목사는 그 일 때무에 거의 한달 동안을 누워서만 지내야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 박 목사의 의자에는 항상 뜨거운 팩이 놓여있다.

그런데 파이프 사건 이후로 아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둑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왜 나를 때리고 나서 너희들이 변화되었냐”고 물으니 “세상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뒹구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목사가 이렇게 사는데 큰 깨달음을 준 이는 바로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다. 박 목사의 할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16평 아파트에서 영동 종교교회를 개척해 부흥시킨 분이다. 할아버지 목사님의 소원이 장손인 자신이 꼭 목사가 되어 안수보좌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 목사가 안수받기 5일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종의 길을 가르쳐 달라는 손자, 박보영 목사에게 할아버지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 말라, 가장 천한 곳에서 섬겨라” 는 말씀을 남겨주었다.

   
 
   
 
박 목사는 “지나고 보니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며 지금도 21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때 아이들은 아니지만 불행한 환경에 있던 아이들이 지금은 변화되어 10명이 협성, 감신, 한신대에 다니고 있다.

박 목사와 함께 살고 있는 21명의 대 식구는 유치원생부터 대학원생까지이다. 이제는 제법 서로 서로를 챙길 줄 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불행했던 삶을 기억해 동인천역, 화도진 공원, 자유공원에서 노숙자들과 극빈곤층 이웃들에게 자기들도 먹지 못하는 가장 좋은 것을 나눠주며 섬기고 있다. 며칠 후에는 내복을 사서 나누어 줄 계획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성탄절에는 노숙자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사랑의 선물을 준비 중이다.

박 목사는 앞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곳으로 가서 복음과 의료봉사를 감당하다 여생을 끝내는 것이 꿈이라며 기도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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