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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교리에 대한 공동선언과 감리교회

공동선언문이 나오기까지

지난 2006년 7월 23일, 제19차 세계감리교(WMC)대회 기간 중에 드린 에큐메니칼 예배에서 칭의교리에 대한 루터교회와 가톨릭교회의 공동선언문에 감리교회도 공식 서명했다. 이 선언문은 이미 1999년 10월 31일 독일의 아욱스부르그에서 루터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 대표들에 의하여 공동 서명된 문서이다. 서명한 날인 10월 31일은 주지하다시피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발표한 날로 종교개혁 발발의 상징적 시점이다. 반면 서명한 장소 아욱스부르그는 1530년 6월 25일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 앞에서 프로테스탄트의 변증서라 할 수 있는 고백문서(Confessio Augustana)가 낭독된 곳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운동에 의하여 분열된 프로테스탄트 제후들이 갈라져 나온 가톨릭교회와의 재결합 시도가 엿보이는 문서다. 루터 및 그의 추종 세력과 가톨릭교회 사이의 분열이 시작된 후에도 양측은 화해를 위한 시도를 꾸준히 전개한다. 그러나 1541년 독일 레겐스부르그에서 화해를 위한 대화는 여러 가지 신학적 현안에 대한 이견으로 파국을 맞게 되고, 이후 가톨릭 측은 반 종교개혁적 트린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루터교 측을 이단으로 정죄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회일치 분위기는 한층 가열된다. 특히 1962년 10월 11일에 개회되어 1965년 12월 8일까지 지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1964년 발표된 에큐메니즘에 관한 칙령은 가톨릭교회 측으로부터의 교회일치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67년에는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이 공동 위원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고 1968년에는 본 공동선언문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한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의 에큐메니칼 연구모임이 결성돼 평균 3-4일 단위로 총 48회 연구모임을 갖게 된다. 이 모임의 개신교 대표 신학자는 Wolfhart Pannenberg이고 가톨릭 측 대표 신학자는 Karl Lehmann이었다. 1986년에는 이 연구모임의 결실인 ‘교리심판-교회분열로’(Lehrverurteilungen-Kirchentrennend)가 탄생되어 본 선언문 작성의 기초자료가 된다. 물론 독일에서 주도된 이 연구 외에도 1972년 말타보고서 ‘복음과 교회’(Das Evangelium und die Kirche), 국제적 차원에서의 연구 결실인 ‘교회와 칭의’(Kirche und Rechtfertigung)(1994) 및 1983녀의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가 공동 선언문 작성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따라서 이 선언문 형성의 주체는 어떤 개인이나 신학자들의 어느 사적 모임에서가 아니라 일련의 다양한 에큐메니칼 대화의 총체적 운동과 과정 자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교회간의 활발한 대화 -물론 감리교회도, 예컨대 가톨릭교회와는 1967-1985년, 루터교회와는 1979-1984년 - 역시 직접 간접으로 이 공동선언문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동시에 ‘공동선언’의 역사는 하나의 특정한 주제에 대한 에큐메니칼 텍스트이다. 특정한 주제란 곧 칭의론이다. 모든 신앙진리를 기독론에 집중시켜놓은 고대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모델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도 전제된 것이고 인정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생뚱맞게 칭의론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리도 그렇거니와 특별히 복음이 살아 있는 진리로 우리에게 실존적으로 들려지려면 ‘현재’라고 하는 것과 맺고 있는 관계의 진리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고 또 그 교리와 복음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묻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임무를 칭의론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 선언문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관심을 복음 선포의 삶의 자리에 대한 성찰로 우리를 자극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의 주요논쟁

공동선언문의 논점은 다음의 일곱 가지다. 1.칭의에 직면한 인간의 무능과 죄, 2.죄용서와 의롭게 만듦으로서의 칭의, 3.믿음을 통한 은혜에 근거한 칭의, 4.의인이자 동시에 죄인 된 존재, 5.율법과 복음, 6.구원의 확신, 7.의롭게 된 자의 선행.

지면 관계상 한 가지 주제, 곧 ‘믿음을 통한 은혜에 근거한 칭의’ 문제에만 국한시켜 다루되 루터교 측 입장과 가톨릭 측 입장의 차이와 공통점을 웨슬리 혹은 감리교의 입장과 비교해 가면서 기술하고자 한다. 루터교 교리에 있어서 하나의 절대적 준거(準據, criritei)가 있다면 그것은 칭의론이요, 이 칭의론의 근본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Sola fides)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한다는 진리다. 이 믿음은 루터가 로마서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바, 곧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이다. 1522년에 히브리서 1장 3절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루터는 “이 정결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가능케 하시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통해서 가능케 하신 것이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통해서인가? 그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스스로 짊어지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통해서라고 할 때 그 말은 그를 믿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자신의 역사를 통해 매일매일 우리를 정결케 하시니 그리스도 밖에서는 이런 일을 도울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신앙을 통해서 신앙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은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있을 수 있다. 이제 그리스도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에베소서 3장 1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는 말씀과 같이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다. 따라서 정결을 믿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긴 인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믿음으로(Sola fide)가 서로 결합되어 칭의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바로 트리엔트 공의회가 교령 제9조에서 “만일 누가 불신자들이 의롭게 되는 것에는 오직 믿음만이 요구될 뿐이라고 한다면 그는 파문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관연 공동선언문에 칭의와 관련하여 ‘Sola fide’가 액면 그대로 루터교회가 주창하듯 반영되고 있는가가 관심의 중심 사안이 될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공동선언문의 몇몇 곳에서는 'Sola fide'를 중심으로 한 논쟁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구문상의 문제점이 등장한다. 공동선언문 제15장은 ‘우리의 공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오직 은혜로와 믿음 안에서 사이에 쉼표가 독일어판에는 빠져 있는 반면 영어판에서는 ‘By grace alone, in faith'로 표기함으로써 ‘오로지’가 ‘은혜로’에만 관계된 서술어로 등장한다. : 필자 주)라고 표현함으로써 'Sola fide'가 명시적으로 강조되고 있지 않다. 공동선언문 16장에서도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의롭게 되며 믿음 자체란…’라고 함으로써 ‘오로지’가 믿음에 대한 서술로서 등장하고 있지 않다. 물론 공동선언문에 ‘Sola fide’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선언문 26장 ‘루터교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로지 믿음 가운데서만(Sola fide) 의롭게 한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칭의와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 Sola fide가 부각되어 있다. 문제는 그 Sola fide가 공동 고백의 문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루터교 이해에만 한정된 특별한 범주 내에서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공동선언문 초안 작성 과정에서 루터교 측에 의해 믿음과의 관련 아래에서도 Sola를 첨가할 것이 요구되었지만 가톨릭 측의 반대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가톨릭의 입장이란 믿음을 어디까지나 칭의의 시작으로 제한하고 구원의 제2원인으로 ‘사랑에 의해 형성된 믿음’(fides caritate formata)을 등장시키려는데 있는 반면, 루터교 측은 믿음을 칭의의 시작, 과정, 완성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 확대 해석하지 않으려는 의도 역시 공동선언문에서 읽을 수 있다. 공동 선언25장에서 ‘인간 안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자유로운 선물에 앞서가고 뒤따르는 모든 것은 칭의에 대한 근거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칭의라고 하는 그 자체가 아예 공로를 치르고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뚜렷하게 못 박고 있다.


칭의에 대한 감리교의 입장

여기에 있어서 감리교 입장은 어떻게 정립될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Sola fide에 대한 웨슬리의 실존적 인식의 발발에 있어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웨슬리에 있어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 그의 영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확고히 붙잡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웨슬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다른 곳에서가 아니고 바로 인간 삶 가운데서 라고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물론 믿음만이 의롭게 한다. 그러나 믿음 홀로만 잇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은혜의 역사가 지니고 있는 양보할 수 없는 우선권, 주도권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 행동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갖고 있는 포괄적인 능력을 말하되 신앙의 본질과 활동을 인간 실존의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것을 붙잡는 것으로서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믿음은 인간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수단이요 그릇으로 본다. 이러한 면에서 웨슬리, 감리교의 입장은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사랑 안에서 역사한다. 따라서 행위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언급한 공동 선언 25장과 ‘삶의 갱신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칭의로부터 구분되기는 하나 이 칭의와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칭의로써 그러한 갱신이 기인되는데 대한 근본이 주어진 것이다’라고 진술하고 있는 선언문 26장과도, 그리고 ‘칭의의 은혜를 통한 삶의 갱신이 강조된다할 때 그것은 가톨릭 이해에 의하면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서의 이 갱신은 항상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라는 가톨릭 측의 입장과도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진정한 에큐메니스트 존 웨슬리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주제 가운데 하나의 예로서 칭의론과 관계된 논점을 취급하였다. 무엇보다도 뚜렷한 것은 의도적이든 또 사실이 사실을 말해주든 웨슬리는 루터 측과 가톨릭 측의 입장 사이에서 절묘하게 양측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비교.조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의 신학적 기본 태도인 중도의 길(Viamedia)을 여기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과연 웨슬리는 18세기 탁월한 에큐메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 그가 단순히 조정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설교를 소개함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칭의와 성화에 대하여 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심히 적은 것을 우리는 항상 본다. 칭의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게 말하고 쓰는 사람 가운데 어쩌면 그렇게도 성화에 관하여는 불분명하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아예 무식하라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루터만큼 이신득의에 관해서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성화에 관하여는 그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 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은 한번쯤 그 유명하다고 하는 그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펴 보라. 다른 한편 가톨릭교회의 저술가는 저술가대로 성화에 관하여는 힘 있게, 성서의 뜻에 맞게 보고 있으나 칭의 주제에 관하여는 전혀 손을 쓰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좋게 여기시어 우리 감리교인들로 하여금 칭의와 성화에 관하여 완전하고 분명한 지식을 갖게 해 주시고 또 양자를 올바르게 구분할 수 있게 하여 주었다.”(‘하나님의 포도원’ 설교에서)

조남홍(사랑밭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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